[2030 세상/정성은]‘덕질’과 애정으로 모십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8일 03시 00분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요즘 행사 기획 일에 미쳐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돈도 안 되는데, 눈만 뜨면 생각나고 하고 싶다. 이 일은 사랑에 빠졌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들게 한다. 첫째는 내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그래서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낼 예정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순간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을 만나는 것. 그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에 우리는 늘 매료된다.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면, 곧 그 이상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소개팅으로 치면 애프터이고, 작품으로 치면 속편이다. 행사는 바로 그 속편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다.

나는 판을 짜고, 주인공을 모셔온다. 그들은 유명한 창작자일 때도 있고, 평범한 내 친구일 때도 있다. 유명인을 섭외할 경우 친구들은 신기한 듯 묻는다. “아는 사이야?” “아니,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 보냈어.” “어떻게 섭외했느냐”고 묻는다면 다만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나는 당신 작품의 이런 점이 참 좋은데, 이걸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닐걸요. 그 사람들을 위해 나랑 뭔가를 해볼래요?’

이런 ‘들이댐’은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도 좋은 거다.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에게 기분 좋은 응원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염려되는 점은 행사 공간이 6평 남짓한 내 작업실이라는 거다. 초대할 수 있는 손님은 많아 봤자 15명. 교보문고에서 사인회 열면 수백 명이 줄 서는 작가님을 이 작은 공간에 초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된 음향시설도 없으면서 좋아하는 뮤지션을 섭외할 수 있을까?

사람을 움직이게 하려면 상대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가진 게 없다. 그래서 자주 궁리했다. 그 사람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 살면서 한 번도 받진 못했지만 마음 깊이 듣고 싶었던 제안에 대해서. 내가 그걸 건넨다면, 그 사람이 여기에 올까? 물론 독심술사가 아니라 자주 실패하겠지만,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다 보면 놀라는 위로를 주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했고, 감사하고 귀여운 답변들이 쌓여가는 중이다. 하지만 결국엔 피해 갈 수 없는 얘기, 그러니까 행사 기획과 관련된 돈 얘기를 해야 했다. 1인당 참가비를 얼마씩 걷어도 푼돈이긴 마찬가지였다. 그 안에서 주인공과 기획자가 돈을 나눠야 했다. 어떤 날엔 ‘공간 사용료를 제외한 모든 돈을 내가 ‘덕질하는’ 창작자분들에게 드릴 거야’라고 했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엔 홍보하고, 모객하고, 포스터 디자인하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서 ‘한 번 행사할 때 이 정도는 벌어야 지치지 않고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었다. 그렇게 머리 싸매고 있자 밴드를 하는 동생이 조언했다.

“일단 좋은 걸 만드는 게 중요해요. 돈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약관계는 최소로 정리한 뒤 잊어버려요. 좋은 콘텐츠 만들기에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결과적으로 파이도 커지면서 나눌 돈도 들어오더라고요.”

밴드가 해체되며 위기를 맞고, 새로운 사람들과 ‘으쌰으쌰’ 하더니 어른이 되었나 보다. 잊지 말아야지.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덕질#콘텐츠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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