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패션기업 한섬이 패션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 최대 패션쇼에서 독창적 디자인과 소재 활용을 인정받으며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실적 면에선 연매출 2000억 원이 넘는 메가 브랜드 육성에 잇달아 성공했다. 내수 경기 침체와 글로벌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의 공세로 국내 패션업계가 고전하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한섬의 성공 비결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2012년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4200억 원을 들여 한섬을 인수하려고 하자 일각에서는 패션 산업의 전망에 비해 ‘무리한 투자’라고 비판했다. 1987년 정재봉 사장이 창업한 한섬은 타임, 마임, 시스템 등을 운영하며 고소득층 남녀를 겨냥해 온 패션 기업이다. 정지선 회장은 한섬을 인수한 뒤 매출 확대에 힘을 실어줬다. 2012년 연매출 1000억 원대였던 타임은 2016년 국내 여성복 단일 브랜드 최초로 매출 2000억 원을 넘어섰다. 시스템과 타미힐피거는 지난해 각각 1500억 원, 2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섬의 캐주얼 브랜드 시스템과 시스템옴므는 21일(현지 시간)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2020 봄·여름 파리패션위크’에 참가한다. 올 1월 ‘2019 가을·겨울 파리패션위크’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유명 백화점과 패션·유통 바이어 앞에서 자사 제품을 뽐내는 것이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올 1월 파리패션위크에서 시스템과 시스템옴므가 기존 아시아권 브랜드에서 보기 힘든 독창적인 디자인과 높은 수준의 소재 활용 방식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면서 “8월부터 전 세계 14개국 20개 도시에서 시스템과 시스템옴므 상품이 판매된다”고 말했다.
대표 브랜드들의 성장으로 한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2016년 7120억 원, 720억 원에서 지난해 1조2992억 원, 920억 원으로 상승했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섬이 2017년과 2018년에 지미추·랑방액세서리 등 부진했던 수입 브랜드 11개를 정리하면서 올 상반기엔 영업이익이 더 좋아질 수 있다”며 “SJSJ의 중국 진출 계약과 더한섬닷컴에서의 온라인 매출 확대가 연간 실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한섬의 성공 요인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원 외에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와 ‘엄격한 가격 정책’을 꼽는다. 경기 변동에 영향을 덜 받는 ‘고가 브랜드’를 표방하며 이에 걸맞게 이미지와 가격을 깐깐하게 관리한 것이 충성 고객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직장인 최모 씨(32)는 “한섬 옷은 지인들에게 준(準)명품으로 인정받는다”면서 “실제로 가격대도 수입 명품 수준으로 비싼 편이어서 아무나 사지 못한다는 이미지를 준다. 이것도 한섬 옷을 사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섬에는 ‘세일하느니 폐기 처분한다’는 내부 방침이 있다. 대표 브랜드 ‘타임’과 ‘마인’은 백화점 판매의 경우엔 계절이 지난 상품도 할인해서 팔지 않는다. 온라인몰 더한섬닷컴에서의 할인 행사는 1년에 2번만 이뤄진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한섬 주력 브랜드는 백화점 세일에 동참하지 않는다”면서 “아웃렛에서도 1년 이상 팔리지 않는 제품은 소각해 폐기 처분한다”고 말했다.
타사 대비 풍부한 디자이너 인력 풀도 한섬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현재 한섬의 임직원 수는 1000여 명으로, 이 중 500여 명이 디자이너다. 일반적인 패션 회사 디자이너 비율(20∼25%)보다 훨씬 높다. 한섬 관계자는 “타임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50여 명의 패션 전문가로 구성된 별도의 타임사업부를 신설했다”면서 “니트디자인, 소재디자인 등으로 조직을 세분화하고 주 단위 품평회를 열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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