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북적이던 ‘핫 플레이스’가 불과 몇 년 만에 썰렁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현상은 이미 오래된 문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된 원인으로는 무리한 임대료 상승이 꼽힌다. 장사가 잘되면 임대료가 올라 지역이 특색을 잃고 발길이 끊기는 악순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지역에 몰려든 다음, 식상해지면 떠나고 마는 ‘일회용 소비’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 과시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망을 형성해 오래 지속되는 공간을 실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구에 문을 연 ‘공집합 상도’는 동네 청년이 자유롭게 오가는 ‘커뮤니티 바’다. 주거 공간이 대부분인 지역에 생긴 낯선 공간이지만, 금방 조용히 찾는 ‘혼술족’과 단골이 생겼다.
공집합을 기획한 이들은 블랭크 건축사사무소의 문승규(32) 김요한(32) 대표. 17일 두 번째로 서울 용산구에 문을 연 커뮤니티 다이닝 바 ‘공집합 후암’에서 이들을 만났다. ‘공집합’의 특징은 공간에 투자한 주민이 직접 바를 운영하는 ‘호스트 나이트’가 열린다는 점이다. 문 대표는 “단순한 술 판매가 아니라 찾는 사람이 바텐더가 되고, 매출 일부를 가져가면서 공간을 함께 소유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독특한 형태는 그들이 상도동에 거주하며 얻은 경험에서 나왔다. 김 대표는 “일상에서 편의점이나 마트, 카페 외에 다니는 곳이 많지 않았다”며 “술을 마시기 위해 이태원이나 연남동 등 번화가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소비를 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기존 상업공간이 술의 ‘소비’에 초점을 둔다면, 공집합은 ‘소통’이 목적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을 추구한다.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한 바 체어 대신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작업을 할 수 있는 평범한 테이블과 콘센트를 놓았다. 바텐더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웠던 바는 1m 폭으로 넓혀, 원할 때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로 조정하고 조도도 높였다. 반려동물 입장을 허용했더니, 강아지와 산책하고 가볍게 한잔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여성들도 안심하고 찾을 수 있어 호응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영업 공간이 ‘소비’를 부추기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놀랍게도 공간이 유지될 정도의 수익은 생겨나고 있단다. 게다가 건축사사무소인 블랭크의 건축·설계 업무로 생기는 수익이 있어 ‘공집합’에서 필요 이상 이윤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문 대표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블랭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쇼룸’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블랭크는 이제 지방으로 눈을 돌리려 한다. 다음 프로젝트로 지방의 빈 공간을 쓸모 있게 변화시키는 ‘유휴’를 준비하고 있다. 올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정착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빈 공간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취지로 지은 이름 ‘블랭크’의 연장선이다.
문 대표는 “과거에는 ‘짓는 건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잇는 건축’이 중요하다고 한다. 건축이 탄생해 운영되기까지의 생애주기를 고려해야 하고, 그 점에서 ‘참여’와 ‘소통’하는 건축을 계속 고민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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