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인 기획경제위가 1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의한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설치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부결했다. 시의원 110명 중 102명이 더불어민주당인 서울시의회에서 같은 당 소속인 박 시장이 발의한 조례를 전원 일치로 부결시킨 사례는 극히 드물다.
박 시장이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서울민주주의위원회는 정책 수립, 예산 편성 등 주요 시정에 시민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시장 직속으로 설치하려는 민관 합의제 기구다. 시의회가 이를 반대한 데는 사업·예산 심의권 등 의회 역할과 권한이 축소될 것을 우려한 시의원들의 반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박 시장이 시민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위원회를 졸속 설치하려다 의회에 제동이 걸린 측면이 더 크다.
우선 위원회가 대표성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위원회는 공무원, 시민단체 활동가, 법률·회계 전문가, 교수 등 15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시의회·구청장협의회가 추천하거나 공모절차를 거쳐 시장이 임명한다. 특정 시민단체나 박 시장의 외부 측근 등 ‘친위 부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조직이라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계획대로라면 위원회는 내년 서울시 일반회계 1%에 해당하는 2000억 원 규모의 예산·사업 심의 권한을 갖고 2021년엔 이 비중이 5%(1조2000억 원)까지 늘어난다. 박 시장은 “다양한 제안이 가능하고 예산까지 배정하는 위원회가 통과하면 세계 최초의 일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대표성이 부족한 민관 합의 기구가 수천억의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타당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취지는 시민 참여 확대라지만 이런 식의 직접민주주의적 정치는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미 신고리 원전 재가동 등 시민정책참여단과 공론화위원회를 도입했다가 사회 갈등을 부추긴 전례들이 많다. 박 시장은 위원회 추진을 중단하고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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