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300억어치 쌀 5만t 지원
정부가 19일 1300억 원 규모의 대북 쌀 지원 카드를 꺼낸 것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단절된 남북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당국 대 당국의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남북 접촉면을 늘리려고 했지만 북한이 응답하지 않아 결국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우회 지원’에 그쳤다. 쌀 지원 카드가 ‘북핵 유인책’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쌀 포대에 ‘대한민국’ 적어, 전용 가능성 줄였다”
지난달 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지 이틀 뒤에 한미 정상은 통화에서 대북 식량 지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북제재 완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을 유인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식량 지원 카드를 꺼내 든 것. 그러나 정부는 쌀 지원을 고리로 남북의 물꼬를 트려고 했지만 북한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9일 브리핑에서 “(남북 간) 양자 지원 방식이 아니고 WFP를 통한 지원이므로 한국 정부와 WFP, WFP와 북한 당국 사이에 3각 대화를 해왔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는 일관되게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조건과 무관하다”고 해왔지만 북한과의 실무급 회담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1300억 원 상당의 쌀 지원이 시기적, 전략적으로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핵 포기 의사가 확실하지 않은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제재와 비핵화 압력을 버틸 체력만 보강해 줄 수 있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까닭에 통일부는 이례적으로 대북 지원 쌀이 군량미로 둔갑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 등을 설명하는 A4용지 8장짜리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2017년 추수된 국내산 쌀을 지원할 예정이며 도정 작업을 거쳐 ‘정곡’ 형태로 보내기로 했다. 정곡 형태의 쌀은 벼와 달리 저장기간이 3∼6개월로 짧아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어 군량미 전용 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또 쌀 포대에 ‘대한민국’을 명기해 전용 우려를 최소화하겠다고도 했다.
북한에 상주하는 WFP 직원 50명이 모니터링에 나선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직원들은 이미 진행 중인 영유아 지원 사업을 주로 맡고 있는 인력이라 쌀 지원까지 모니터링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 9년 만의 쌀 지원 재개에 여야 공방도 재개
보수 야당에선 북한이 지난달 두 차례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상황에서 충분한 국민적 합의 없이 정부가 대북 쌀 지원을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은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있었는데 대북 지원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굴복 내지 보상 차원으로 보일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짝사랑에도 전략과 타이밍이 있다”면서 “두 차례나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한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비방 수위를 높이는 북한에 기어이 쌀을 바치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우리 북한 주민의 식량난 해결과 남북미 대화 재개에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지난달 17일 정부가 인도적 대북 지원을 공식화한 이후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뤄진 시의적절한 판단”이라고 했다.
정치권 공방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한미 정상이 지난달 식량 지원에 공감대를 형성한 뒤 가급적 빠르게 실무 협의한 끝에 (오늘) 결과가 나온 것으로 지원 시기를 당기거나 미룬 점은 없다”고 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최고야 / 세종=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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