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유해성분 수십종 정보 ‘깜깜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0일 03시 00분


[담배 이제는 OUT!]‘영업기밀’ 주장에 막힌 국민 알권리


최근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원모 씨(27·여)는 한국에서 피우는 담배가 미국 담배보다 맛이 더 좋고 중독성이 강하다고 느낀다. 다양한 맛과 향을 강조한 각종 첨가물이 목 넘김을 편하게 해줘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멘톨’을 제외한 가향 담배 생산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첨가물이 화학적 변화를 거쳐 연기로 흡입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담배 한 개비에는 얼마나 많은 유해성분이 들어있는지 국내 흡연자들은 전혀 알 수 없다. 한국에서는 담배 성분과 흡연 시 발생하는 유해물질 정보를 담배회사들이 정부에 제출하거나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19일 한국건강진흥개발원에 따르면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따라 담배에 함유된 성분과 정보를 담배회사가 정부에 제출하는 국가는 67개국이다. 이 중 51개국은 담배 성분과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담뱃갑 경고 그림을 도입하는 등 엄격한 담배 규제를 시행해 온 캐나다는 니코틴과 타르, 암모니아 등 25개 독성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할 때 모든 담배회사가 동일한 기준 속에서 실험하도록 하고 있다. 유해물질 측정 시 연기 흡입량(55mL)과 흡입 간격(30초)을 지키고, 환기 구멍을 막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정해둔 것이다. 이런 강력한 규제로 캐나다는 2001년 22%였던 흡연율을 2016년 12% 수준까지 낮췄다.

미국은 담배 판매를 승인 받을 때 담배의 유해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한 결과를 식품의약국(FDA)에 내야 한다. 프랑스는 각 첨가물을 왜 넣었는지 그 이유까지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각 담배의 니코틴과 타르, 일산화탄소 함유량을 담배회사로부터 독립된 실험실에 의뢰해 검사한다.

이처럼 건강과 관련된 국민의 알권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선 담배회사의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담배 성분과 관련한 정보들이 베일에 감춰져 있다. 담뱃갑에 표기된 성분은 니코틴과 타르 함유량뿐이다. 유해물질 정보는 ‘니켈과 벤젠 등 6가지 발암물질이 담배연기에 포함돼 있다’는 담뱃갑 경고 문구가 전부다.

이는 식품과 의약품, 화장품 등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제품의 성분 공개 기준과 비교할 때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화장품은 전체 성분 표기제가 적용돼 화장품에 사용한 모든 성분을 공개해야 한다. 일례로 AHC의 ‘내츄럴 퍼펙션 선스틱’에 함유된 655개 성분은 온라인상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공주대 환경교육학과 신호상 교수는 “식품에 첨가할 수 있는 성분이라도 다른 화학물질과 결합해 연기로 흡입할 경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며 “담배 성분을 상세하게 공개해야 제조사가 마음대로 첨가물을 넣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성분을 공개할 뿐 아니라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 충북대 연초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타르 수치가 표기된 것보다 높게 나온 제품이 전체 173종 중 148종(85.5%)에 달했다. 측정된 타르의 양이 표기보다 2.2배나 많이 나온 제품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담배 유해물질 분석에 드는 인력과 비용 부담을 제조사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희진 교수는 “식품이나 의약품은 제조사가 안전성을 검증하도록 돼 있다”며 “담배 역시 제조사가 유해성 검증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담배 유해성분#유해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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