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야성(不夜城)을 방불케 하는 서울 시내 번화가. 배수구에는 담배꽁초가 잔뜩 있고 음료를 담았던 플라스틱 용기도 나뒹굴고 있었다. 행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가지만 환경미화원이 출근하기 전이라 나서서 치우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이때 지나가던 시민이 나뒹구는 쓰레기들을 보더니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기록한다. 겉보기엔 그저 일반인이지만 서울 시내 거리 청결도를 평가하는 이른바 ‘미스터리 쇼퍼(암행감찰원)’다. 지저분한 보도와 골목길 모습은 고스란히 해당 자치구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이는 가상의 상황이지만 다음 달부터는 현실이 된다.
서울시는 서울시내 가로(街路)와 골목길의 쓰레기 수거 및 청소 상태를 시민이 직접 점검하는 도시청결도 시민평가제를 다음 달부터 11월까지 매달 시행한다고 19일 밝혔다.
도시청결도 시민평가제는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선발한 시민이 내린 △현장청결도 평가(100점 만점에 65점) △시민만족도 조사(30점) △추진실적 평가(5점)를 합산해 1위를 차지한 자치구에 시가 특별조정교부금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특별교부금은 청소시설 개선과 장비 확충, 쓰레기통 설치, 직원 격려에 쓰게 된다.
그동안 서울시가 외부 평가기관에 위탁하던 현장청결도 평가는 시민 약 100명이 대신한다. 시가 다음 주 선정할 시민평가제 용역업체에서 성별, 연령, 거주지 등을 고려해 100명을 뽑을 예정이다. 이들은 자치구마다 20개씩, 모두 500개 구역의 청소 상태를 살핀 뒤 쓰레기 수거 여부를 5단계 척도로 평가한다. 이때 기업이 시중의 자사 제품과 서비스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손님처럼 가장해 현장에서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퍼 기법이 활용된다. 아직 구체적인 평가 시간, 장소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시민만족도도 각 자치구 10명씩, 시민 250명을 상대로 도로 청소 상태나 청소 홍보 활동 등에 대한 만족도를 설문조사하게 된다. 청소 차량 운행 실적이 우수한 자치구 등은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도시청결도 시민평가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안한 것이다. 서울시 가로 및 골목길 청결도가 지난해 87.1점으로 2016, 2017년의 88.0점보다 떨어진 것이 제안한 배경이다.
서울시는 시민평가제가 도입되면 자치구들이 자율적으로 경쟁하게 돼 도시 전체가 한층 깨끗해질 것을 기대한다. 시민이 직접 평가하기 때문에 ‘시민 눈높이’에 맞는 청결 기준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평가를 통해 경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각 자치구의 관련 부서 담당자와 환경미화원, 청소대행업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치구들 반응은 엇갈린다.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있고 관내 청소업체도 많은 강남구는 적극적으로 시민평가제를 준비하겠다고 자신한다. 강남구 관계자는 “기존 청결도 평가에서도 강남구는 상위권이었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중구 관계자는 “관내에 서울역 명동 동대문 서울시청 등 하루 유동인구가 350만 명인 지역이 있어 다른 자치구보다 불리해 보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도시 청결에까지 경쟁 구도를 도입하는 것이 불만스럽다는 자치구도 있다. 한 자치구의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특별교부금을 걸고 거리 청소에까지 경쟁을 붙이는 것이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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