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좀 얄밉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보니 이전과 인상이 달라졌다. 솔직해 보이기도 했다.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얘기다.
그는 일본의 북핵 협상 수석대표이자 한일 관계 등을 주무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핵심 외교 관료다. 그런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한국을 향해 날 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도쿄의 외무성을 찾아 가나스기 국장을 만났다. 그가 밝힌 한일 현안 입장은 앞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북한과의 접촉 상황 등 민감한 소재에도 비교적 솔직히 답해준 것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아베 정부 내에서의 그의 위치였다. 매주 2회가량 아베 총리를 만나 직접 현안 보고를 한다는 것이다. 북핵 관련 동향부터 경색된 한일 관계까지 중요 외교 현안들이 그의 입을 통해 아베 총리의 귀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일본 현지에서는 가나스기 국장에 대해 ‘아베를 움직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란 평가까지 나온다. 워낙 아베 총리를 자주 만나다 보니 단순히 지시를 받고 이행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들을 직접 전달해 아베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가나스기 국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한 소식통은 “가나스기 국장을 통해 한일 관계에 대한 우려 목소리를 일본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한 일본 전문가는 “외무성은 아베 총리와 일상적으로 대화하고 있다. 그만큼 아베 총리가 외교 현장의 목소리를 자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선 아직도 외교 현장의 목소리가 청와대에 제대로, 신속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대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느냐는 문제의식도 여전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취임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외교부 패싱’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수준이다. 당장 25일만 해도 오전에 강 장관이 국회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한 지 몇 시간 만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을 만나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총리와 장관들이 같은 당에서 몸을 부딪는 내각제 일본과 여전히 수직적 구조의 대통령제 한국의 보고 시스템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 때는 북핵 관련 핵심 외교관들이 당사국과의 회의 뒤엔 직접 대통령을 찾아가 현안 보고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외교관들이 현장에서 뛰며 가져온 정보를 가감 없이 즉각 수렴하려는 청와대의 의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청와대와 외교 현장의 거리감이 커지는 것이 또 다른 외교적 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정책이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점차 임계점으로 가고 있지만 여전히 손을 놓고 있는 한일 관계, 북한은 꿈쩍하지 않지만 낙관론만 가득한 북핵 정책도 이런 상황과 그리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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