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이 택시운전? 말 없어도 소통할 수 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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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나눔]‘고요한 택시’ 앱 만든 송민표 코액터스 대표

21일 서울 중구 충무로 충무창업큐브에서 만난 사회적기업 코액터스의 송민표 대표가 청각장애인 택시운전사와 승객들의 소통을 돕는 애플리케이션이 장착된 단말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해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택시 서비스 ‘고요한 택시’를 선보였다. SK행복나눔재단 제공
21일 서울 중구 충무로 충무창업큐브에서 만난 사회적기업 코액터스의 송민표 대표가 청각장애인 택시운전사와 승객들의 소통을 돕는 애플리케이션이 장착된 단말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해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택시 서비스 ‘고요한 택시’를 선보였다. SK행복나눔재단 제공
요즘 취업시장은 말 그대로 ‘엄동설한’이다. 여러 지표가 보여주듯 연령대나 학력 수준을 불문하고 ‘고용절벽’에 대한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다. 일자리가 말라 버린 상황에서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더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기업 ‘코액터스’의 송민표 대표(26)는 이처럼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을 위한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청각장애인들이 운전할 수 있는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 운전기사가 단말기를 통해 승객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것이다. 송 대표는 택시 안이 조용하다는 의미를 담아 이 서비스의 이름을 ‘고요한 택시’라고 명명했다. 21일 서울 중구 충무로 사무실에서 송 대표를 만났다.

“대학교를 다닐 때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애인의 고용현실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그가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청각장애인들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한 게 계기가 됐다. ‘이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가 없을까.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들 위험한 작업현장에서 고된 노동만 해야 하는 것일까.’ 오랜 고민 끝에 비장애인과의 소통 도구만 있으면 청각장애인들도 얼마든지 택시기사를 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7년 8월 팀을 꾸렸다. 그리고 지난해 초 실제 서비스에 들어갔다. 사업 초기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초기 자본이 없어 온갖 창업 경진대회에 나가 상금을 받아 충당했다. 자신이 개발한 사업이 청각장애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고쳐야 할 점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청각장애인들을 인터뷰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나이 지긋한 택시회사 관계자들을 만나 자신의 서비스를 홍보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사업 1년 만에 서울에 3대, 경기 남양주시에 8대, 경북 경주에 1대 등 총 12대의 ‘고요한 택시’가 탄생했다. 송 대표는 ‘고요한 택시’ 단말기를 택시회사에 제공하고, 운전기사로 일할 청각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서비스 교육을 시킨다. 코액터스에서 청각장애인 운전기사를 양성한 뒤 택시회사에 취업을 시키는 방식이다. 송 대표는 아직 기사 수가 많지 않지만 앞으로 크게 확대될 것을 자신하고 있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택시회사가 청각장애인 고용 요청을 수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장애인을 고용하면 위험관리에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송 대표는 “‘고요한 택시’는 기사가 승객들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일방적 대화가 없어 오히려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또 “최근 수도권 지역은 택시회사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곳이 많다”며 “청각장애인이더라도 차를 안정적으로 운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택시회사에서 적극적으로 고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로 일하는 청각장애인들도 업무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운전기사로 일하기 전까지 공장에서 조립 등 단순 공정을 반복하거나 위험한 노동현장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아예 직업이 없었거나 비정규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송 대표는 “비정규직이었던 분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 달에 200만 원 이상, 많게는 300만 원대 수입을 올리는 기사님들을 보면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운전을 하는 게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청각장애를 가진 택시기사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만큼 오히려 조심스럽게 방어운전을 하는 게 습관이 돼 있다. 그만큼 사고율이 낮다. 또 기사들에게 운전 매너와 승객을 대하는 예절에 대해서도 교육하고 있어 승객과의 충돌이 거의 없다.

다만 송 대표는 이 사업을 진행하며 청각장애인을 향한 우리 사회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다른 장애에 비해 청각장애는 외관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배려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장소에서 수화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청각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송 대표는 다음 달 11일 제8회 SIT(Social Innovators Table)의 연사로 참석해 사회적 기업을 하며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문제를 발표한다. SIT는 각자의 분야에서 혁신 사례를 만들어가는 사회혁신가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네트워킹 플랫폼으로 SK행복나눔재단이 주최하고 있다.

송 대표는 “우리 기사님들을 고용한 택시회사의 사장님 중 몇몇 분은 직원과 소통하겠다며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이런 게 바로 세상을 바꾸는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앞으로 이들을 위해 더 많은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고요한 택시#청각장애인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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