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와 정부가 합의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방안은 한전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전반적으로 전기료를 인상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강조해왔지만 7, 8월 전기료를 깎아주는 여름철 누진제 개편안을 밀어붙이다 전기료가 되레 오르는 역설적 상황을 맞게 됐다.
1일 한전과 정부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7∼12월)부터 전기 사용량이 적은 1단계 가구에 월 4000원 한도로 전기료를 할인해주던 필수사용량 보장공제가 폐지되거나 축소된다.
한전과 정부가 이런 공제혜택 축소에 합의한 것은 손실보전 없이 여름철 전기료를 깎아줄 경우 배임으로 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한전 이사들이 우려했기 때문이다. 7, 8월 누진제 구간을 확대해 가구당 전기료를 월평균 1만142원 내릴 경우 한전은 매년 3000억 원가량 손실을 보게 된다. 한전 이사들은 회사에 손해를 미치는 누진제 개편안을 통과시키면 소액주주들이 제기하는 배임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정부에 손실보전 대책을 요구해 왔다.
정부는 한전 이사들이 지난달 21일 누진제 개편안의 의결을 보류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필수보장공제 폐지 △계절·시간대별 요금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에 합의했다.
필수보장공제가 폐지되면 한전은 연간 40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여름철 요금 인하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가 전기를 많이 쓰는 계층의 요금을 깎아주기 위해 저사용 가구의 요금을 올렸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주택용 전기요금을 계절별, 시간대별로 달리하는 차등 요금제 도입과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전기료 체계를 개편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 역시 전기료 인상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의 여름철 요금 할인 방안이 정해지자 한전 내부에서는 “전기를 많이 쓰는 여름철 요금을 낮추면 반대로 전기를 적게 쓰는 겨울철 요금은 올려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었다. 이런 제안이 현실화하면 겨울철 요금이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계절별,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가 적용되는 일반용 요금의 경우 경(輕)부하 시간대(오후 11시∼오전 9시) 요금 기준 겨울철이 가장 비싸다.
이와 함께 한전 이사들은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하고 전기요금에 포함된 취약계층 지원 등 복지비용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원가 이하 요금 체계 개편은 이사회가 한전 경영진에 요구한 부분”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계절별, 시간대별 요금제 도입 등 소비자 선택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1일 한전이 제출한 ‘누진제 개편을 위한 전기요금 약관 변경’안을 인가했다. 이에 따라 매년 7, 8월 1단계는 200kWh(킬로와트시)에서 300kWh로, 2단계는 400kWh에서 450kWh로 확대돼 이 기간 동안 전국 1629만 가구의 전기료가 월평균 1만142원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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