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에 나선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두 곳이다. 북한과 이란이다. 이 두 나라에 대한 미국의,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를 보인다. 북한을 거론할 때는 ‘아름다운 친서’를 보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밀한 관계라고 강조한다. 이란에 대해서는 조건 없는 대화를 언급하면서도 최근 이란의 미국 무인기 격추를 이유로 공격명령을 내렸을 정도다. 비핵화 합의를 깨고 핵개발에 나섰던 북한에 대해선 호의적인 반면에 이미 체결한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오히려 먼저 탈퇴한 미국이 대결을 불사하는 것은 기존 국제질서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최근 두 나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차별적인 접근 방식과 그 파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3차 정상회담을 했다. 그 직후인 1일 이란은 JCPOA에 따른 농축우라늄 보유 한도량을 초과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이를 두고 ‘트럼프가 북한에 미소 짓고 이란을 위협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는 등 외신들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두 나라의 현재 관계는 다루는 방식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과정은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의 폭을 줄이고, 미국 중심의 보호주의로 가려는 트럼프 대통령 대외정책의 특징을 보여준다.
북한과 이란의 성향과 대응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이런 차이점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CNN방송은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직전에 ‘트럼프가 김정은과 협상할 수 있다면, 이란과는 왜 못 하나’라는 에런 데이비드 밀러 우드로윌슨센터 부원장의 기고를 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를 이란 핵문제와 달리 역사책에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전례 없는 성공 티켓으로 인지하고 있다”며 “노벨 평화상이 수여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접근법 차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투자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란과 맺은 JCPOA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업, 즉 과거의 비즈니스에 해당한다. 하지만 북한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무시 전략인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인해 ‘손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미래의 투자처에 해당한다.
협상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중재자의 존재도 중요하다. 한국 정부의 중재자 역할과 지속적인 지원은 북한과 미국을 움직였지만 이란에는 열정적인 중재자가 없다. 미국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당국자들 주변엔 이란과 적대관계인 이스라엘 로비스트들의 압박 기류가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재선을 위해선 북한이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1979년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등 이란은 미국에 좌절감만 안겨준 나라다. 하지만 북한은 김 위원장 방미, 북핵 협상 초기 단계 합의 등 미 대선 과정에서 필요한 순간마다 선물을 줄 수 있다. 폭스뉴스 앵커인 터커 칼슨이 “이란과 전쟁하면 재선이 날아간다”고 설득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격이 취소됐다는 얘기도 선거의 맥락에서 눈길을 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미 대선이 끝날 때가 북핵 문제 해결에서 진정한 위기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선거 걱정 없이 4년간 업적을 남기고자 하는 순간부터 북핵 문제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게임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북한이 친구처럼 가까워졌고 이란이 위험한 적으로 보이지만, 그 처지가 바뀔 수 있다. 이에 대비하는 작업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결코 이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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