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미국에서 온라인 커머스 사업을 하던 한 청년 기업가가 자금난에 빠졌다. 회사 도산을 막으려면 급전 3000만 원이 필요했다. 급히 한국에 돌아와 대출 상담을 받았지만 시중은행 2곳에선 단칼에 거절당했다. 저축은행도 필요한 돈의 절반인 1500만 원까지만, 그것도 22%의 고금리로 대출해주겠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국의 P2P(개인 간) 대출 스타트업인 ‘렌딩클럽’에 심사를 요청했다. 놀랍게도 금리 7.8%에 3000만 원 전액을 바로 손에 쥘 수 있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핀란드 순방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린 P2P 스타트업 렌딧의 김성준 대표(34) 이야기다. 2015년 3월 창업한 렌딧은 벤처캐피털 등 투자자로터 243억 원의 투자를 받았고 국내 개인신용대출 시장의 44%를 차지하는 국내 1위 P2P 업체다. 당시 그가 손을 벌렸던 렌딩클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고 현재 기업 가치 9조 원의 유니콘이 됐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의 렌딧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천재형 창업가’에 가까웠다. 서울 과학고와 KAIST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 석사과정에 진학해 기계공학과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 때부터 학업과 사업의 경계는 없었다. KAIST를 다니다 말고 NHN에 입사해 일했고 이후엔 ‘올라웍스’라는 증강현실(AR) 스타트업과 소셜 벤처 ‘1/2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스탠퍼드대 기계공학과 석사 도중 자퇴하고 ‘스타일세즈’라는 온라인 커머스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자금난을 겪은 것이 렌딧 창업의 밑바탕이 됐다.
김 대표는 “당시 한국에선 죄다 거절되던 대출이 렌딩클럽에선 중(中)금리로 바로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고 했다. 그는 바로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금융권에 진출한 스탠퍼드대 동문들에게 무작정 e메일을 보내 답을 구했고, 그중 한국에 있는 동문들을 직접 찾아가 티타임을 하며 한국에서의 P2P 시장 가능성을 토론했다.
3개월의 시장조사 끝에 ‘돈이 된다’는 판단이 섰다.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는 미국의 10분의 1인 데 비해 대출 규모는 4분의 1로 상대적으로 커 대출시장의 잠재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대출 수요만 크면 위험할 수 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사태와 2003년 ‘카드깡’ 사태를 거치며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의 신용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안전한 데이터 인프라를 갖춘 게 사업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시중은행이 잡아내지 못하는 중금리 대출 수요를 렌딧만의 금융실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안전하게 소화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큰 은행들이 금융 실적의 단순 평균치만으로 신용평가를 하는 데 반해 렌딧은 매월 달라지는 실적을 하나하나 분석해 변별력을 높이고 금리를 세분화한다”고 설명했다.
렌딧은 사실상 한국에 전무했던 P2P 시장을 열었다. 하지만 관련 시장이 커지려면 이용자 보호를 탄탄히 할 수 있는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현재 P2P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다수 계류돼 있다”며 “법적으로도 P2P 산업 이용자 보호가 보장될 수 있도록 장치가 마련되면 P2P 시장은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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