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계 최대 시장 中판매 감소에… 인건비 인상-미래차 충격 3중고
선두주자 만도 고강도 구조조정… 영업익 3년새 반의 반토막 업체도
인력 수급-자본 동원에 한계… 경쟁력 갖춰도 펼칠곳 없어
10곳 중 4곳, 해외 이전 검토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예측해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포기하고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 자체가 좋지 않은 데다 (인건비 등) 고정 비용도 오르다 보니 사업 방향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4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개최한 ‘자동차 부품산업의 현황과 발전 과제’ 포럼에서 만난 김치환 삼기오토모티브 대표가 “요새 어려운데 어떻게 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한 답이다. 이 회사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1차 부품 협력사로 변속기·엔진 부품을 생산해 현대·기아차 등에 납품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2015년에는 영업이익이 237억 원까지 늘었으나 지난해 55억 원으로 3년 만에 4분의 1로 토막이 났다.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수요 감소와 인건비 상승, 친환경차 보급에 따른 공급 물량 감소 등 때문이다.
김 대표는 “거래처 다변화를 위해 다른 완성차 업체도 만나면서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고급 인력 수급과 자본 동원에 한계가 있었다”며 “국내 부품사들이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췄는데 이걸 발휘할 만한 여건을 (정부가) 만들어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23만 명 이상의 고용을 책임지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매출액 6조 원 규모의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부품사인 만도가 임원 20%를 내보내고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 접수에 들어가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부품업계는 만도의 구조조정 결정이 도미노처럼 다른 업체들로 확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부품사들을 중국 기업이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은 “인천 대구 울산 경기 등 4개 지역의 부품사들을 돌아보니 앞으로 1, 2년이 고비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대부분 매출이 10% 이상 줄면서 회사를 정리하겠다고 말한 경영진도 있었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부품사들의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1차 협력사 기준 부품업체 수는 2014년 879개에서 지난해 831개로 줄었다. 같은 기간 총 매출액도 78조1185억 원에서 71조4423억 원으로 8.55% 감소했다. 1차 협력사보다 경영 상황이 훨씬 안 좋은 2, 3차 협력업체는 현황 파악조차 쉽지 않다. 올 5월 기준으로 국내 9939개 부품사의 전체 고용인원은 23만1590명으로 2016년보다 1만 명 이상 감소했다.
부품업계는 위기의 원인으로 크게 3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부품 수요도 급감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약 2808만600대로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중국 시장에서 완성차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28년 만이다. 현대·기아차를 쫓아 중국에 공장을 짓고 수출 물량을 늘렸던 국내 부품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 등의 정부 정책도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자동차 주요 단체 6곳이 모인 자동차산업연합회가 1∼3차 부품사 33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진행한 심층 설문을 보면 ‘가장 큰 경영상 애로사항’으로 인건비 부담(29%)을 꼽은 업체가 가장 많았다. 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력운용 계획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라는 질의에는 기업의 40%가 생산량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의 38%는 해외 이전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차와 자율주행기술 등으로 대표되는 미래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실적이 악화돼 투자금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기업 부담을 줄일 고용정책을 수립하고 연구개발(R&D) 예산도 적극적으로 집행해 줄 것을 촉구했다.
김준규 자동차산업협회 이사는 “과도한 최저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전환 배치와 파견제도 허용 등을 통해 근로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품업계를 포함한 자동차 산업은 완전히 시장이 뒤집히고 있는 변혁의 시기”라면서 “각자도생이 어려운 만큼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 서로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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