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어제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조치를 발동했다. 이들 품목은 지금까지 3년마다 ‘포괄허가’를 받아왔지만 어제부터는 계약 건별로 경제산업성 허가를 받아야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심사에는 90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의 경우 일본의 소재 공급이 끊겨도 4개월은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 끌면 우리 기업뿐 아니라 일본, 나아가 전 세계 공급망에 큰 피해가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보복 규제는 내용이 확정적이지 않고 변동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 경제에 미칠 피해와 파급 결과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수속 절차가 번잡해지지만 수출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고, 허가까지의 기간도 가변적이다. 심사 규제에 자의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도 매우 크다. 재량권의 영역을 극대화함으로써 계속 상황을 장악하고, 경제 마찰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아베 신조 정부의 의중이 엿보인다.
현재로선 일본 측이 계속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형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이번 조치에 추가해 안보상의 우방을 뜻하는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2차 보복 조치 검토에 들어갔다. 예정대로 8월부터 시행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려된다. 벌써부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는 물론 자동차 및 화학업계까지 긴장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까지 가게 될지, 분쟁 와중에 수출을 규제하는 소재가 더 늘어날지 등도 오리무중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크니 기업들이 겪는 혼란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자체가 마이너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현 상황은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에 의해 촉발된 것이어서 기업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기업들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21일의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뭔가 국면 전환이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일본이 취할 행동의 시나리오별로 최소치에서 최대치까지 면밀하게 예상 피해를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를 정치의 도구로 이용한 아베 정권의 행태가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은 일본 안팎에서 더 고조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럼에도 아베 정권이 지지 세력만을 바라보며 강경 드라이브를 고집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애꿎은 기업들이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심각한 사태다. 조용하고 신중한 대응 기조를 유지하되 비상한 위기 상황임을 명심하고 면밀한 준비를 통해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기업과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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