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만든 현상들[오늘과 내일/허진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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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누적되는 인건비 부담… 없어지거나 생기지 않는 일자리

허진석 산업2부장
허진석 산업2부장
“46년을 일궈 온 회사가 올해 처음으로 2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습니다.”

중소기업 사장 A 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좌절도 배어 있는 듯했다. 1998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도 이겨내며 적자를 면해 왔는데, 지금은 더 힘들다고 했다.

그는 자사 최저임금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총지급액을 계산한 종이를 한 장 보여줬다. 시급은 8350원이지만 여기에 유급 휴무일수와 상여금, 4대 보험, 퇴직금, 기타 수당을 포함한 기업의 시간당 부담금은 약 1만68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저임금이 지난 2년간 29%나 오르고, 적용 시간도 길어지면서 경제 현장에선 피로감이 가중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A 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신입 직원뿐만 아니라 기존 직원들의 월급도 조금씩 올려줘야 했다. 그 결과 2년 전 매년 50억 원 가까이 지급되던 임금 총액이 지금은 55억 원으로 5억 원이나 늘어났다. 2년 전 회사의 연간 이익은 5억∼10억 원 수준이었다.

2개 분기 연속 적자의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은 아니지만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원가비 등 다른 비용 부담도 늘었고, 불경기로 매출이 시원찮아진 측면도 적자의 원인이다. A 씨는 “인건비 부담은 앞으로도 매년 져야 하는데 생산성은 그만큼 빨리 늘지 않아 평생 처음 ‘사업을 접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A 씨의 물건을 매입하는 곳도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이어서 납품 가격을 크게 올리기도 힘든 여건이다.

A 씨 주변에는 사업 포기를 고민하는 사장이 많다. 그는 “요즘은 지인들이 모였을 때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하소연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사업을 접을 수 있을까’를 화제에 올린다”고 전했다. 누군가 사업을 접었다고 하면 박수를 치며 축하까지 해 주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A 씨는 “올해 적자가 나면 매년 내던 수억 원의 세금을 한 푼도 못 내게 될 것 같다. 만약 내가 사업을 접으면 우리 직원들 일자리는 어떻게 될지가 걱정이다”고 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를 ‘고용 없는 사업자’로도 내몰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B 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조직원을 두고 있었지만 지금은 인건비 부담 탓에 ‘1인숍’으로만 운영 중이다. 올해 초 잠깐 직원을 뒀다가 마음의 상처만 입었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맞춰주지 않아도 되니 기술만 가르쳐 달라고 했던 직원이 한 달만 일하고 관두더니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한 것이다. B 씨는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다 물어주고 벌금까지 내야 했다. 그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게 낫지 이제 다신 직원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지나간 일이니 해주는 말이라며 대규모 공장을 짓다가 자동화로 전환한 사례를 들려줬다. 그는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정책을 보면서 경영 리스크를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사람 대신 자동화 설비를 늘렸다”고 했다. 최저임금은 한번 오르면 내리기 힘든 데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매년 어떤 부담을 지게 될지 불확실한 반면 자동화 설비에 드는 비용은 예측이 가능해 경영에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일자리’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은 지나간 이슈가 아니다. 한번 결정된 최저임금이 1년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고심 중이다. 앞서 열거된 현상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은 힘이 세다는 사실이 그 결정 과정에 ‘정상적으로’ 반영돼야 할 것이다.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r@donga.com
#최저임금 인상#인건비 부담#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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