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하다 보면 학생들의 무모한 시도나 터무니없는 실수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노벨상 수상자 시라카와 히데키의 전도성 고분자 발견은 제자가 실수로 촉매를 1000배 이상 넣은 바람에 이뤄진 것이다. 물론 실수를 실수로만 보지 않고 유연한 사고로 새로운 현상의 의미를 끈질기게 추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 역시 일본에서 유학할 때 지도교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실험을 했던 적이 많았다. 반항은 아니고, 그놈의 호기심 때문에 가라는 길에서 벗어났던 것뿐이었다. 현실적으로 결과를 내는 데 더딘 길이었지만, 폭넓은 경험이란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더 도움이 되었던 길이 아니었나 싶다.
학생들에겐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젊음이라는 다면적인 능력이 있다. 그 젊음 속에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무모함이 있다. 이런 무모함이 창의성의 원천이다. 이런 젊음의 힘은 어떠한 지혜와 지식보다도 힘이 세다. 물리학은 이러한 젊음의 힘에 의해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꾸준히 발전해왔다.
대표적인 예를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새로운 원자 이론을 제시한 닐스 보어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보어의 정신적, 재정적 도움을 받은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그는 지금까지 물리학에 적용되었던 결정론이 원자의 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다. 틀에 박히지 않은 젊음의 힘으로 하이젠베르크는 그렇게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어젖혔다.
원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는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이라는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 이 두 성질은 불확정성 원리를 따른다. 보어는 이런 원자 세계의 근본 원리를 상보성으로 파악했다. 어떤 실체는 서로 상충되는 성질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그 실체를 파악하려면 그 성질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두 가지 성질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 입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 역시 이처럼 이중적 특성을 가진 입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삶은 두 물리적인 상황, 그러니까 새로움과 동시에 낡음을, 즉흥스러움과 동시에 성실함을, 부드러움과 동시에 견고함을, 자극과 동시에 평온함을, 냉철함과 동시에 따듯함을, 엄격함과 동시에 관용을, 고독과 동시에 관계를 요구한다. 이런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기적 같은 물리적 두 상반된 상황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이끄는 에너지다.
실수와 기회는 서로 맞닿아 있다. 무모함과 지혜, 이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취하기란 아마도 동시에 두 문을 통과하는 기술보다 더 어려움이 요구되는 기술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무모해서 더 지혜로운, 그런 젊음을 맘껏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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