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미국 측에 “향후 핵 관련 논의에서는 한국이 빠지는 게 좋겠다”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제 북-미 간 직접 담판으로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내고 한국과는 경협 등 제재 완화 이후 상황을 논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4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3차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직전 여권 인사들에게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 담판으로 비핵화 협상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싶어한다”며 이같이 전했다. 비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수행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입국한 뒤 북측과 3차 북-미 정상회담 조율자 역할을 맡았다.
북한의 이런 요구는 향후 비핵화 논의에선 더 이상 한국의 중재를 거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비핵화 이슈는 북-미 협상 사안’이라면서도 협상 과정에서 북-미 양측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하노이 노딜’ 과정에서 서로 메시지가 뒤섞이는 등 적지 않은 혼란도 발생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세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이 요구하는 지점이 명확해졌다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월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북한은 5건의 유엔 제재 해제를 각각 요구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북한은 비건 대표에게 “제재 완화 논의 과정에서 중국, 러시아를 너무 의식하거나 고려하지 말라”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핵과 관련된 논의에서 남측을 배제한 것처럼 제재 완화 논의가 진행되면 그동안 북한의 대북제재 해제 주장에 동조했던 중국, 러시아를 어느 정도 멀리해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미다. 또 하노이 회담 당시 영변 핵시설의 폐기만을 제안했던 북한은 미국 측에 “영변 폐기부터 시작하는 방법을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북한이 속도감 있는 비핵화 협상을 명분으로 북핵의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하는 또 다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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