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과 7080의 세대통합형 동거… 네덜란드 후마니타스 요양원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7일 03시 00분


[‘스마트 시니어’ 시대]
‘요양원의 청년들’ 주거비 아끼고, 노인들은 말동무 얻어

네덜란드 데벤터르 요양원 ‘후마니타스’에 사는 청년 소러스 뒤만 씨(오른쪽)가 아니 미델뷔르흐 씨와 하루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요양원에는 뒤만 씨 등 청년 6명이 노인 약 150명과 살고 있다. 데벤터르=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네덜란드 데벤터르 요양원 ‘후마니타스’에 사는 청년 소러스 뒤만 씨(오른쪽)가 아니 미델뷔르흐 씨와 하루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요양원에는 뒤만 씨 등 청년 6명이 노인 약 150명과 살고 있다. 데벤터르=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소러스 뒤만 씨(30)는 최근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인근 데벤터르의 ‘후마니타스’ 요양원에서 생활한 지 3년째다. 거주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6월 18일 이곳을 찾은 기자가 ‘생면부지 노인들과 같이 사는 것이 지루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노인들은 지루함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축구 경기를 볼 때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맥주를 마실 때는 비어퐁(유명한 술자리 게임)을 즐긴다. 내 또래의 친구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도 말했다.

후마니타스 요양원에는 그를 포함해 대학생 혹은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 6명이 노인 약 150명과 함께 살고 있다. 요양원은 비싼 주거비로 고민하는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방을 제공한다. 노인들이 사는 것과 똑같은 원룸이다. 그 대신 학생들은 두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한다. 첫째, 노인의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한 달에 30시간을 쓴다. 정보기술(IT) 기기 사용법 교육, 대신 장봐주기, 같이 축구 경기 보기, 맥주 마시기 등을 위한 시간이다. 둘째, 통금은 없지만 야간 고성방가 등으로 함께 사는 노인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이곳에 사는 대학생들은 주거비를 아낄 수 있는 것 외에도 노인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뒤만 씨는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즐거움,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행복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이곳에 살면서 ‘나이’는 단점이 아닌 강점임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노인들도 젊은이들과 생활하면서 얻는 게 생겼다. 이 요양원에 9년째 거주 중인 아니 미델뷔르흐 씨(88)는 “학생들과 같이 살면서 조용하던 요양원이 생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변했다. 우리를 도와주는 것도 고맙지만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안아주는 게 참 좋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시끄럽게 한다거나 무례하게 구는 일은 없다. 다들 착하고 친근하다”고 강조했다.

후마니타스 요양원이 대학생 거주자를 받아들인 시점은 2012년. 당시 정부는 중증 환자가 아닌 80세 이상 노인의 장기요양 서비스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요양원 비용 부담이 커지자 요양원행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노인들이 늘었다. 이에 후마니타스는 비용 인상 없이 노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당시 헤아 세이프커스 후마니타스 최고경영자(CEO)가 떠올린 답은 ‘학생’이었다. 비싼 등록금과 주거 비용으로 고민이 많은 젊은 학생들에게 방을 제공함으로써 요양원의 분위기를 밝고 활기차게 만드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렸다.

후마니타스의 세대 통합형 모델이 알려지면서 입소를 희망하는 노인들이 다시 늘었다. 직원 흐리스 니울란트 씨는 “현재 대기자만 30명 이상이다. 요양원에 들어오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원자가 늘어나면서 부담도 덜어졌다. 학생들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요양원에 들어온다.

노인 대기자가 많기에 학생들을 위한 방은 6개밖에 없다. 기존에 살던 학생이 나가면 후마니타스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공석 공고를 낸다. 입소를 원하는 학생들은 지원 동기를 담은 신청서를 내고, 요양원 노인 2, 3명이 서류 심사를 통과한 학생들을 직접 면접해 선정한다. 니울란트 씨는 “한 번은 공석 2자리가 났다고 공고를 냈는데 100명 이상이 지원했다”고 했다. 입소한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할 때까지 이곳에서 계속 머물 수 있다.

각국 요양원들도 이곳을 속속 벤치마킹하고 있다. 프랑스 리옹,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요양원들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뒤만 씨는 “7년간 별문제 없이 운영됐다는 점만으로도 매우 성공적”이라며 “세계 곳곳에서 세대 통합형 요양원이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데벤터르=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네덜란드#후마니타스 요양원#청년#노인#세대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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