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33년 만에 드러난 화성 용의자, 진실의 법정엔 공소시효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0일 00시 00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신원이 33년 만에 드러났다.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3건의 피해자 유품에서 나온 유전자(DNA)가 현재 복역 중인 한 무기수의 것과 일치한다는 걸 밝혀낸 것이다. 경찰은 나머지 피해자들의 유품에서 나온 DNA도 대조 중이다.

1986년 9월부터 4년 7개월여간 10건이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8년 9월 박모 양을 살해한 윤모 씨의 모방범죄 외에는 범인을 잡지 못했다. 수사와 수색에 연인원 205만 명이 투입되고, 2만1000여 명이 조사받았지만 소득이 없어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하지만 경찰의 끈질긴 노력과 수사 기법의 발달로 사실상 미궁에 빠진 범죄를 밝혀낸 것이다. 아직 최종 확정은 아니고 공소시효도 지나 처벌도 못 하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어 다행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장기 미제사건이 남아 있다. 각 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에서 수사 중인 살인사건만 260여 건에 달한다. 1991년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은 11년만인 2002년 유골이 발견됐지만 여전히 범인이 잡히지 않고 있다. 1991년 1월 이형호 군 유괴살인사건, 1999년 5월 황산 테러로 숨진 여섯 살 김태완 군 사건도 마찬가지다.

2012년 5월 미국 뉴욕경찰은 1979년 5월 25일 실종된 에이탄 페이츠(당시 여섯 살)를 살해한 범인 페드로 에르난데스를 33년 만에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페이츠가 실종된 날을 ‘실종 어린이의 날’로 정하는 계기가 될 정도로 미국인의 가슴을 울렸지만 수사에는 큰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범인의 지나가는 넋두리를 소홀히 듣지 않은 주민 신고와 수사의 끈을 놓지 않은 경찰의 집념으로 마침내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한데 누가, 왜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유족들의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개구리소년 유족 대표였던 우종우 씨는 2011년 ‘반인륜범죄공소시효 폐지’ 촉구 운동에 나서면서 “어린아이들을 왜 죽여야만 했는지 그 사실만이라도 알려주면 현상금 5000만 원을 주겠다”고 호소했다. 김태완 군 사건은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의 계기가 됐지만, 정작 이 사건은 단 보름 차이로 적용되지 못했다. 완전범죄는 없다. 공소시효 폐지가 소급적용되지 않아 형사 법정에는 세울 수 없다 해도, 끝까지 찾아내 진실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화성연쇄살인사건#dna대조#장기 미제사건#공소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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