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베를린, 2020년 도쿄[오늘과 내일/윤승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0일 03시 00분


나치 때와 닮아가는 도쿄 올림픽… 공조 통해 ‘올림픽의 선전 기능’ 차단해야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이 정치와 연결되는 걸 엄격히 금지하지만, IOC 역사를 보면 올림픽은 한 편의 거대한 정치 무대였다. 역설적이다. 올림픽의 정치적 (역)효과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1936년 독일 아돌프 히틀러와 베를린 올림픽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됐던 독일의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했다. 세계인의 지탄이 쏟아지던 인종 차별주의와 팽창주의를 교묘하게 은폐해 ‘관대하고 평화로운 독일’이라는 가공된 이미지를 세상에 전달하고자 했다. 대회 기간 유대인 박해 정책은 감춰졌고, 베를린 시내에는 오륜기와 나치 깃발(하켄크로이츠)이 함께 나부끼며 평화를 외쳤다.

미국과 유럽에서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지만, 미국이 히틀러에 현혹되면서 좌초됐다. 사상 최다인 49개국이 참가하면서, 전 세계는 히틀러의 위장 평화 전략에 넘어갔다. 이웃들의 경계심이 느슨해지자 독일은 본색을 드러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이어졌다.

IOC는 베를린 올림픽과 관련한 논란들에 대해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오히려 근대올림픽의 아버지인 피에르 쿠베르탱은 베를린 올림픽을 ‘생애의 역작’으로 평가하기까지 했다. 나치 정부는 그런 쿠베르탱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둘러싼 분위기도 1936년 그때와 비슷하다. 오랜 경제 침체와 방사능 사고를 겪은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은 올림픽을 통해 ‘부흥’과 ‘재건’을 하겠다고 외친다. 후쿠시마의 방사능 위험성과 팽창주의 야욕을 세탁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선수들이 방사능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에서 경기를 치르고,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먹으면 방사능 위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심이 풀릴 공산이 크다. 위험성은 엄연하지만 일본은 단시간에 방사능 안전 국가로 인식되고, 방사능 오염수 방류 등에 속도를 낼 것이다. 패럴림픽 메달을 욱일기 이미지로 디자인하고, 경기장 내 욱일기 응원을 허용하겠다는 건 팽창주의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욱일기가 올림픽을 통해 평화의 상징으로 세탁이 되면, 일본은 족쇄를 풀어내며 군국주의에 속도를 낼 것이다. 하켄크로이츠가 그랬듯, 비극이 재연될 수 있다.

IOC는 1936년 그때처럼 눈을 감고 있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지난해 후쿠시마를 방문해 일본의 방사능 선전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독도 문제에 엄격했던 IOC였지만, 욱일기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의 대회 준비 속도가 ‘올림픽 신기록급’이라는 찬사만 쏟아낼 뿐이다.

불행히도, 국제사회의 반응은 1936년보다 못하다. 베를린 올림픽을 앞두고 유럽과 미국이 히틀러를 의심해 보이콧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하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과 관련해서는 다른 나라의 문제의식이 크지 않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IOC에 서한을 보내면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아베 정권이 나치의 히틀러보다 수월하게 올림픽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문제임을 외쳐야 한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축구단, 폴란드의 음료 회사 등은 우리 국민의 항의를 받고 욱일기 디자인을 삭제했다. 진실은 공유해야 위력을 발휘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세상은 빤히 보이는 것에도 당했다. 올림픽의 선전 효과는 그렇게 무섭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오늘과 내일#도쿄 올림픽#베를린 올림픽#나치#히틀러#아베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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