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범지가 버선을 뒤집어 신으니/사람들은 모두 잘못되었다 말하네. 그대들 눈에는 거슬릴지언정/내 발을 다치게는 할 수 없다네. (梵志飜着襪, 人皆道是錯, 乍可刺니眼, 不可隱我脚.) ― ‘버선을 뒤집어 신다(飜着襪·번착말)’(왕범지·王梵志·약 590∼660)
허울뿐일지라도 관습에 순응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리다. 눈치레하느라 웬만한 불편이나 불합리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미관을 따지고 남의 이목을 생각하다 보면 관습을 일탈하는 건 곧 예의나 상식에 반한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한데 시인은 세상의 논리를 과감히 허물고 버선을 뒤집어 신었다. 버선 안쪽은 실밥 자국 때문에 거칠고 때로 발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실속 없이 번드레한 겉치장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이 선언이 별스럽긴 해도 미욱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시인은 그것을 자존(自尊)이자 자기 육신에 대한 예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고정관념에 길들여진 소심한 범인(凡人)에게는 차라리 통쾌한 파격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관습이나 관행의 이름으로 인간의 자존, 자애(自愛)를 옭매는 세속의 멍에는 버선 따위의 외관에만 한정되지는 않는 법. 그러니 이 시는 세상의 위선을 향한 일갈이자 우리의 삶을 새삼 성찰하게 하는 오도송(悟道頌) 같기도 하다.
젊은 시절 부유한 환경 속에서 학문 도야에 매진했던 왕범지는 수말당초(隋末唐初)의 혼란 속에서 가문이 몰락하자 사방을 떠돌며 걸식하다시피 곤궁한 생활을 보냈다. 쉰 살 이후에는 불문(佛門)에 귀의했으나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면서 선학적(禪學的) 교리나 해학적 사유를 곧잘 시에 담았다. 그가 무덤을 바라보며 지은 시 역시 그런 예다. “성 밖의 저 흙만두, 만두소는 성 안의 사람들./한 사람이 하나씩만 먹을 수 있으니/맛없다 타박하지 말게나.” 일상의 사소한 소재를 다루었으되 심오한 아포리즘(잠언)이 빛났던 시인. 후스(胡適)는 구어체 시를 개척한 그의 선구자적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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