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4일 우주 진화의 단서를 담은 파동인 ‘중력파’가 처음으로 지구상에서 관측됐다. 미국 소재 중력파 관측소인 ‘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라이고)’ 협력단 과학자들은 중력파 검출 이후 5개월 만인 2016년 2월 인류 역사상 첫 중력파 관측을 발표하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1915년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며 존재를 예측한 중력파는 100년 만인 2015년 9월에 관측·확인됐다. 인류의 첫 중력파 관측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배리 배리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명예교수와 킵 손 칼텍 명예교수, 라이너 바이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는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4년이 지난 현재 라이고 협력단은 중력파 검출 감도를 높이는 라이고 업그레이드를 완료한 뒤 4월 1일부터 3차 관측에 들어갔다. 정확한 분석 결과가 아직 나온 것은 아니지만 중력파로 추정되는 관측 건수만 불과 5개월 만에 29건이다. 과학자들은 중력파가 처음 관측된 지 4년 만에 본격적인 ‘중력파 천문학’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중력파는 블랙홀이 다른 블랙홀이나 중성자별과 충돌할 때 또는 중성자별 2개가 충돌하는 등 초대형 우주 이벤트가 발생할 때 강력한 중력에너지가 우주 공간에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강력한 중력파가 지나가면 일시적으로 시공간을 휘게 만들어 왜곡한다.
라이고는 한 변의 길이가 4km인 L자형 진공 터널을 만들어 양변의 끝에 강력한 레이저를 쏠 수 있는 광원과 반대쪽 끝에 거울을 붙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중력파 관측은 ‘레이저 간섭계’ 원리를 이용한다. 레이저 간섭계는 광원에서 나온 레이저를 분리시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보내고 거울을 통해 다시 반사시킨 뒤 한곳으로 모아 간섭을 일으켜 미세한 파동의 변화를 감지한다.
라이고 광원에서 나오는 레이저의 강도를 높이고 저주파 신호 감도를 높이는 등 업그레이드를 거친 뒤 4월 1일부터 본격 3차 관측 가동에 돌입한 라이고는 현재까지 29건의 중력파 후보를 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아직 한 번도 관측하지 못했던 블랙홀과 중성자별의 충돌로 생긴 중력파도 포함된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에 참여한 강궁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의 데이터 분석 경험을 볼 때 중력파 후보로 분석 중인 29건이 모두 중력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특히 이론적으로만 알려졌던 블랙홀과 중성자별 충돌로 생긴 중력파가 입증되면 천문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고 연구단 과학자들은 이미 라이고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차세대 중력파 검출기다. 대표적인 게 유럽이 추진하는 ‘아인슈타인 텔레스코프(ET)’와 미국이 준비하고 있는 ‘코스믹 익스플로러’ 프로젝트다.
ET는 라이고처럼 L자 형태의 간섭계가 아닌 삼각형 형태의 간섭계를 지하에 구축해 중력파 관측 감도를 높이는 개념이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ET 구축을 위한 예산을 검토 중이다. 코스믹 익스플로러는 형태는 라이고와 유사한 L자이지만 진공 터널의 길이가 라이고(4km)의 10배인 40km에 이른다. 블랙홀끼리의 병합과 광범위한 우주에 존재하는 중성자별의 개수를 파악하는 게 목표다. 미국립과학재단(NSF) 중심으로 투자가 추진되고 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은 중력파 첫 관측 때만 해도 조명을 받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연구 프로젝트를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장을 지낸 이형목 한국천문연구원장이 연구원 내에 레이저 간섭계에 활용되는 광원 특성을 개선하는 연구를 실험실 단위로 진행하는 연구 그룹을 신설했다.
강궁원 책임연구원은 “차세대 중력파 검출기 프로젝트가 유럽,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가시화하고 있다”며 “아직 국내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연구개발(R&D) 지원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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