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심 대표는 음식물을 감쌌던 종이와 비닐, 플라스틱 용기 등을 수돗가에서 수세미로 닦은 다음 재활용품 수집함에 넣었다. 그는 “음식물이 묻으면 재활용을 할 수 없다는 보도를 본 뒤 이런 실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 따르면 이 같은 ‘가정폐기물 재활용’ 노력만으로도 연간 2.77기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 책을 쓰고 엮은 세계적 환경운동가이자 기업가인 호컨은 2001년부터 기후환경 분야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지구온난화를 막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뭘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늘 같았다. “그런 목록은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기후변화를 야단스럽게 경고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게임은 끝났다’는 패배적 인식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무렵. 저자는 ‘드로다운(drawdown)’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로 결심한다.
드로다운은 기후 용어로 온실가스가 최고조에 이른 뒤 매년 감소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말한다. 호컨은 각국의 과학자들, 공공 정책 전문가들에게 호소문을 보내 70명의 연구진으로 구성한 ‘프로젝트 드로다운’을 결성했다. 이들은 에너지, 식량, 여성 문제, 건축, 도시계획, 토지이용, 교통체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포괄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대책 100가지를 집대성했다. 이들은 2050년까지 달성 가능한 온실가스 배출 저감 효과, 잠재적 비용까지 산출했다.
일례로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함으로써 우리는 2050년까지 70.53기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피할 수 있다. 채식 위주의 식단은 66.11기가톤의 배출을 줄인다. 여학생 교육과 가족계획은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극적인 효과를 발휘해 각각 59.60기가톤을 절감한다. 1기가톤이란 40만 개에 이르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에 물을 채우는 양과 같은 규모. 2016년 한 해 동안 세계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총량은 36기가톤으로, 1440만 개의 수영장을 가득 채울 양이다. 건물 옥상 녹화하기, 승차공유, 전기자전거, 미생물 농업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이들 솔루션이 제시하는 감축량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2.4∼4.6%가 해양 생물체에 의해 포집되고 격리된다. ‘푸른 탄소’ 습지 생태계가 퇴화되거나 파괴될 때 단순히 탄소 흡수 과정이 멈추는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연안습지는 오랫동안 격리된 대량의 탄소를 내뿜는 무시무시한 방출원이 되는 것이다. 연안습지를 보호함으로써 15기가톤의 탄소를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공기 중에 방출된다면 약 53기가톤 이상의 이산화탄소에 상당하는 양이다.”
기후변화는 그동안 과학적 논쟁, 종교적 미신, 정치적 올바름 논란으로 치부돼 왔다. 아니면 재난영화나 호러물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공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책은 무력감을 딛고 치밀한 계획과 행동, 실천만이 기후변화를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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