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꺾인 지 오래. 콧속으로 들어차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름다운 계절이 왔다. 가을을 열어젖히기 마침맞은 국내외 소설을 출판사 문학 담당 편집자에게 물었다. 》
○ 서효인 민음사 한국문학편집부 문학팀장
벌써 가을이고, 이는 올해도 다 가버렸다는 말과 같다. 연말 특유의 흥청거림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기 일쑤인 겨울보다 되레 가을이 지난 삶을 얼추 정리하기에 더 낫다. 그런 계절의 소설로 ‘스토너’를 소개한다.
주인공 스토너는 운명에 분연히 맞서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다 바치지 못한다. 기민하고 재바르지 않다. 그는 그저 타인의 악함이나 자신의 실수로 만들어진 결과에 맞춰 산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다. 꼭, 당신과 나의 삶 같기도 하다. 죽음 앞에 선 스토너는 유언 대신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네 인생에)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가을과 제법 어울린다. 아파트와 자동차, 통장 잔액…. 그런 것들에 기대어 우리는 사는 걸까.
소설은 답보다는 질문을 거듭하는 장르라서, 따로 해설은 없다. 다만 조금 정리는 될 것이다. 내가 사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 거기에 발붙인 우리의 인생에 대해. 그것을 소설의 총체성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 전성이 창비 한국문학팀장
첫 책을 출간한 2010년 이후, 최진영은 우리 소설에서 가장 터프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인물들에게 자신의 몫을 만들어주는 그의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거침이 없다.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어떤 방식으로건 끝내 돌파해내는 그의 소설은 늘 무언가 대단한 작품을 읽고야 말았다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해가 지는…’은 새로운 매력까지 선사한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살아남은 자들은 안식처를 찾아 길 위에 오른다. 시·청력을 잃은 동생을 지키며 걷는 한 여성, 일가친척과 함께 집을 떠나온 또 다른 여성. 두 사람의 교감과 사랑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동력이다.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공간을 앞에 둔 표현이라기엔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두 사람에게도 그리고 읽는 이에게도 아름다운 세계가 끝내 다가든다.
저무는 계절, 오늘도 잘 견뎌야 할 때라면 누군가와 ‘해가 지는 곳으로’ 걸어 봐도 좋겠다.
○ 이상술 문학동네 국내1팀장
소설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최은미의 소설,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어제는 봄’이다. 그는 “나는 여전히 그날 저녁의 공기를 결 하나까지도 떠올릴 수 있다”고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공기의 결 하나하나를 낱낱이 그리면서 우리를 그 속으로 밀어 넣는다. 목련나무가 몽우리를 하얗게 올리고 개나리와 벚꽃이 피고 조팝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10년 동안 한 소설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붙들려 있는, 자책과 분노와, 차마 발설할 수 없는 ‘죄’에 붙들려 있는 정수진과 함께 서 있게 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실은 연옥과 같은 가족의 굴레에 갇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기어이 한 발짝을 내뻗기 위해 짜내는 안간힘에 같이 몸을 움찔거리게 된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조각을 그가 어떻게든 써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 끝이 어떻게 되건 기어이 봄은 지나가 이렇게 가을이 되고, 되풀이해 닥쳐올 다음 봄날의 우리는 그와 함께 아마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 이민희 문학과지성사 편집자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무슨 결실이라도 맺어야 할 것만 같은 계절, 가을이다. 실은 얼마 안 남은 한 해를 제대로 살아야겠다며 느지막이 마음을 다잡는 때에 더 가깝다. 이래도 되나, 이래선 안 되겠다 싶으면 주섬주섬 책을 집어 들게 된다.
‘깊이에의 강요’는 안팎의 질책으로 심신이 노곤할 때 떠올리게 되는 책이다. 표제작에는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무심한 말을 듣고 고뇌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화가가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론가는 화가의 죽음 뒤 말을 바꿔 그림에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깊이에의 강요”가 내비친다고 평한다. 그러니까 그냥 한번 던져본 말이었단 소리다.
겨우 이것밖에 못 하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우리를 흔드는 남의 말은 사실 ‘그냥 한번 던져본 것’일 경우가 많다. 새겨들어야 할 말도 있겠지만 일일이 신경 쓰는 건 정작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무릇 귀는 열어두고 입은 다물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가끔 귀를 닫을 때도 있어야 한다고 소심하게 주장해본다. 작은 배타심은 때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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