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경북 구미공단(현 구미국가산업단지) 명칭을 ‘김대중 국가산업단지’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4년 11월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와 김관용 경북지사, 두 지역 국회의원들과 시장·군수들이 모여 경북-전남 상생협력협약을 맺었는데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이름을 활용한 사업을 함께하기로 한 것.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전남 광양공단에는 박정희, 구미공단에는 김대중을 붙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두 지역은 화합 차원에서 구미에 ‘전남도민의 숲’, 목포에 ‘경북도민의 숲’을 조성했다.
▷1969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로 조성된 구미공단은 70, 80년대를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가난한 농촌마을이던 구미읍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구미역 앞은 공단 초기 3.3m²(1평)당 6만 원 정도 하던 땅값이 2년여 만에 20만 원이 넘었고 그나마 계속 올라 팔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주택 공급이 따라잡지 못해, 초기 일부 동네에서는 한 집에 평균 16명이 살 정도였다.
▷구미공단은 중국의 덩샤오핑이 경제발전 모델로 삼을 정도로 성공했다. 60년대 일본에서는 전자산업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이를 본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수출을 주도한 섬유산업과 미래전략산업인 전자산업을 함께 육성할 지역을 찾았는데, 섬유도시 대구에 인접하고 낙동강의 공업용수가 풍부한 구미를 선정했다. 70년대 중반 부산에 있던 금성사(현 LG전자)가 옮겨오고, 1988년 삼성전자가 이곳에서 국내 최초의 휴대전화 SH-100을 개발하면서 구미는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됐다. 1995년 불량 휴대전화 15만 대를 불태우며 ‘애니콜 신화’가 시작된 곳도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이었다.
▷올해 공단 50주년을 맞아 구미시가 제작한 홍보영상에서 박 전 대통령이 빠졌다고 한다. 그 대신 DJ의 구미4공단 기공식 참석,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출 200억 달러 달성 기념식 참석, 문재인 대통령의 구미형 일자리 협약식 참석 장면이 들어갔다. 시는 제작업체의 실수라고 하지만 두 차례 시사회까지 한 걸 보면 실수만은 아닌 것 같다. 현 구미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육영재단의 불법적 재단 운영에 저항해 (영남대)교수 임용에 탈락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구미시는 22일까지 음악회, 심포지엄 등 공단 5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인정하긴 싫지만 열매는 먹겠다는 걸까. 정치적 입장이 다르고, 호불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조차 외면하려는 ‘편협함’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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