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에서)
17일 오전. 아주 잠깐, 서울 강남구 A빌딩 앞에서 멈칫했다.
요즘 세상에 교회는 금방 찾았다. 스마트폰이 재깍 알려준다. 근데 너무 ‘교회’스럽지 않다. 창문에 붙은 커다란 글씨는커녕 십자가도 안 보였다. 손바닥만 한 팻말 하나가 전부. 내부 역시, 50평 남짓. 정갈하되 단출하고, 소담하며 따뜻하다. 하긴, 그래서 더 김수연 목사(71)답다.
서울 강남구 ‘한길교회’ 담임목사인 그는 세간에선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로 더 낯익다. 전국에 학교마을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을 330여 개나 세웠다. 매주 방방곡곡을 누비다 보면 목회자 업무는 다소 느슨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김 목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무리 빡빡해도 주일엔 반드시 돌아온다. 교회에서 모든 피로를 잊고 평화와 안식을 찾는다”고 못 박았다.
―교회가 아담합니다. 너무 바깥 활동에 치중한 거 아닙니까.
“허허, 그럴 리 있나요. 1987년 교회 창립한 뒤 허투루 운영한 적이 한시도 없습니다. 조그만 물품 하나도 제가 챙깁니다. 쓸고 닦는 것도 가족이 다 하죠. 30년 넘게 일부러 이 정도 규모로 유지했습니다. 수백 명씩 몰려와도 다른 교회 추천하며 신도 수를 조절했어요.”
―교세를 확장해도 모자랄 판에 줄이다니요.
“그게 제 지론이에요. ‘Twenty families are enough(스무 가정이면 족하다).’ 4인 가정이면 80명, 조부모 합쳐도 120명. 목사 1명에겐 신도 100명 안팎이 딱 맞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 하죠. 그 ‘말씀’이란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요. 목회자와 신도가 제대로 소통하려면 그 정도가 좋습니다. 괜히 덩치만 키워 위세를 떨치는 이익집단이 되면 안 돼요.”
실제로 한길교회는 예배 뒤 꼭 치르는 행사가 있다. 간이의자를 치운 뒤 식탁을 차린다. 그리고 다 함께 ‘점심 한 끼’를 먹는다. 시시콜콜 정담과 세상사는 얘기를 나눈다. 그 옛날, 대소사마다 모두가 모여들던 시골 마을처럼. ―미국 개척시대에 서부의 한 마을을 이끌던 목사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고생스럽진 않습니다, 하하. 양을 돌보는 목자가 더 맞겠네요. 한 마리마다 애정을 갖고 제대로 돌보는 겁니다. 목동은 쉴 만한 물가와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는 게 사명이죠. 목사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는 이웃과 지역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신앙공동체여야 합니다. ‘한길’이란 함께 신을 향해 걸어가는 하나의 큰길을 일컫는 거죠.”
―설교문도 하나하나 직접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하죠.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아야 신도들도 수긍합니다. 바빠서 밤을 새워도 단 한 자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습니다. 물론 매주 새로운 글을 쓰는 게 정말 어려워요. 똑같은 말만 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도 뭐든 목사가 본을 보여야죠.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래라 저래라 훈수만 두는 종교인은 세상에 필요 없습니다.”
―목회자들은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있던데요.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입니다. 이웃과 나누면 언젠가 그 복이 돌아옵니다. 산간벽지를 찾아가 책을 나누는 ‘작은도서관…’ 운동도 그런 믿음이 바탕이 된 겁니다. 저 보세요. 사재고 뭐고 다 털어 ‘작은도서관…’에 쏟아부었습니다. 처음엔 주위에서 그러다 굶어죽는다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지금껏 삼시 세 끼 챙겨먹고 마음도 풍족합니다.”
―요즘 특별히 자주 전하는 말씀도 있으세요.
“음…. 아무래도 시국 얘기를 안 할 수 없겠죠. 안타깝게도 진영논리가 일반인들까지 물들였어요. 다 좋은데, 제발 상대를 존중하라고 당부합니다.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 얘기는 들어주길 바랍니까. 그건 가족이라도 불가능해요. 아, 곁다리로 하나 더 덧붙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싹 다 지워버리라고. 함부로 말 퍼 나르고 타인 맘 아프게 하는 것만큼 헛된 일이 없습니다.”
문을 나설 즈음, 김 목사는 함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들려줬다. “뭐든 이웃과 나누는 맘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며. 그가 작은도서관 보급 활동을 통해 세상과 나눈 책 수백만 권이, 밥 한 끼가 머금은 온기 역시 그러할 터. 문득 한길교회 안 작은 십자가가 세상 어느 첨탑의 그것보다 커 보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