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건설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 건설업계는 아직도 ‘최저가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 리더십 문제, 건설사업자에 대한 신뢰 부재, 시스템과 제도의 선진화 등 갈 길이 멀죠.”
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만난 국내 최초 건설사업관리(CM·PM)사 한미글로벌의 김종훈 회장(70)은 “영국이나 미국에선 ‘건설 용역을 어떻게 가격만으로 선정하느냐’며 회사의 가치, 경험, 기술 등을 본다”며 이처럼 말했다. CM·PM이란 건설사업 전 과정의 타당성, 효율성 등을 발주자의 입장에서 검토하는 일종의 컨설팅을 말한다.
한미글로벌은 일반인에겐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창립 이래 도곡타워팰리스, 잠실롯데타워,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등 국내외 굵직한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지난달 29일엔 미국 세계적인 건설전문지 ENR 선정 CM·PM 분야 세계 9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국내 건설 분야 회사가 세계 10위권 안에 든 것은 이례적이다.
김 회장은 1970, 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며 CM·PM의 효능을 크게 체감해 1996년 미 합작 법인으로 회사를 창업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같은 국가 중대 행사에도 CM·PM의 중요성이 빛을 발했지요. 당시 월드컵 개최까지 4년밖에 남지 않아 경기장 건설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 사내 전문가들이 설계시공병행방식을 도입하고 조립식 공법, 지붕 면적 축소 등 아이디어를 내 공사 기간과 비용을 모두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인 김 회장은 불황을 맞고 있는 건설업계에 “진정한 혁신이 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해외 건설시장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세부 분야도 다양하다. 중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22개국에 지사, 법인, 그룹 계열사를 보유한 한미글로벌은 전체 매출과 손익의 50%가 해외 사업에서 나온다.
“중국과 가격경쟁에서 밀린다고 언제까지 핑계만 댈 수는 없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죠. 미국에선 사전건축공법 등 건설의 제조업화가 크게 대두되고 있는데 여기에 뛰어드는 국내 건설사가 별로 없어요. 중국이 진출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김 회장은 4대강 사업과 같은 일부 국책사업으로 건설업 전반에 대한 불신이 생겨 국가 주도의 인프라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민간에선 ‘분양 후 손 털기’ 식의 개발만 많고 지역 연계형 도시 재생이나 금융권을 동반한 개발 프로젝트가 부족하다”며 “해마다 민관합동 건설혁신기구를 정치권에 제안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응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 김 회장은 재미·성장·사회공헌 세 가지로 구성된 ‘행복경영’을 펼치는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그는 “‘엑설런트(excellent·탁월한) 피플에 의한 엑설런트 컴퍼니’가 회사 창립 모토”라고 소개했다.
한미글로벌에선 현재 외국에서 한 달 살기, 의무 육아휴직, 명사 초청 특강, 조직 내 재능기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한 달 한 권 이상 독후감 쓰기 같은 독서 활동도 활발하다.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독서를 장려하고 있는데 지난 한 해 130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독서왕이 탄생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인생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김 회장은 “존경받는 회사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잘 물려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겠다고 선언해 왔다.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를 비롯해 이미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적 있는 그는 내년에 ‘건설 프로젝트 성공 방정식’ 등을 주제로 책을 펴낼 예정이다.
“바쁜 CEO 일과를 쪼개 책을 쓰는 것도 건설 분야 45년 경험을 사장시키지 않고 내가 가진 노하우와 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힘이 닿는 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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