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만 있고 효과는 없는 ‘위선의 정책’이 수두룩하지만 교육정책은 그 괴리가 유독 심한 것 같다. 우수한, 또는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을 공정하게 선발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교육 정상화에도 기여해야 하는 대입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런 명분으로 지난 10년간 급격히 확대됐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과연 그 사명을 다하고 있을까.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비리 의혹으로 공정한 선발과 불평등 완화라는 신화에는 금이 갔다. 그렇다면 학종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지를 따져볼 차례다. 그래야 대입 개편의 방향이 선다.
“초등 5학년이면 수학의 정석을 시작해야 한다.” 교육 담당으로 처음 강남 사교육을 취재했을 때 선행 광풍을 확인하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이에 대해 교사나 교육단체의 진단은 한결같았다. 사교육의 공포 마케팅. “철수는 수학의 정석을 두 번 풀었어요. 어머니, 이러다 우리 영희 대학 못 가요”라는데 학원 문을 박차고 나올 학부모가 있겠냐는 거다.
정작 학부모들의 분석은 달랐다. 상위권 대학들이 수시전형 중에서도 교과 성적과 비교과 활동을 함께 평가하는 학종을 늘리면서 선행 광풍이 불었다고 한다. 보통 1년 정도 선행을 했는데 이제는 상급학교 공부를 미리 한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에 가면 학종을 준비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까. 그 불안한 틈새를 학원이 파고들었다.
교과 성적이 좋으려면 수행평가를 잘해야 한다. 사회 과목을 예로 들면, 동아시아 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된 영상을 제작하는 식으로 출제된다. 취재 중 만난 학부모는 “기말고사 앞두고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밤을 새운 딸이 울면서 학교를 갔다. 선행 안 시킨 엄마들 다 후회한다”고 했다. “옆 반에선 과학실험 보고서가 제출 당일 가방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교과 성적 외에 진로, 봉사, 독서활동 등 비교과 항목이 기재된다. 고스란히 입학사정 자료로 활용된다. 만약 의대에 진학하고 싶은데 조 장관의 딸처럼 의학논문 제1저자로 무임승차할 수 없다면 병원에서 주말마다 의료봉사라도 해야 한다. 선행학습을 해 둬야만 비교과 활동을 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학생부 기재 항목이 점점 줄었지만 대입과 직결되는 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진보 진영에선 학종이 선행학습을 유발하고 공교육을 왜곡시킨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교육열을 돈으로 뒷받침하는 서울 등 일부 지역, 특목·자사고 등 일부 학교에서 빚어진 적폐라고 본다. 그런데 지방이나 일반고도 다르지 않다. 학종으로 대학에 갈 만한 아이만 교내 상을 몰아주고, 학생부를 정성껏 작성해준다. 나머지 학생들은 공교육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학종 신화’를 신봉하는 이들에 대해 학부모들은 이런 의심을 한다. 학생선발권을 뺏긴 대학이 그나마 재량권을 가질 수 있는 전형이고, 교사는 평가라는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서 아닌지.
학종이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신화는 거짓이다. 거꾸로 학교가 잘 가르친다,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신뢰가 쌓일 때 학종이 안착된다. 제발 교육부가 ‘어떻게 평가할까’ 말고 ‘어떻게 가르칠까’를 논의했으면 한다. 입시는 공교육을 혁신하는 절대반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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