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도시에선 꿈도 못꿀 경험 제공… 2030 핫플레이스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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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 통제 지역’ 강원 양양, 서핑족의 성지 된 비결은

석양으로 아름답게 물든 강원 양양 서피비치의 라운지. 서피비치는 2017년 세계적인 바다의 축제 ‘코로나 선셋 페스티벌’을 유치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고 해변 문화의 메카로 떠올랐다. 서피비치 제공
석양으로 아름답게 물든 강원 양양 서피비치의 라운지. 서피비치는 2017년 세계적인 바다의 축제 ‘코로나 선셋 페스티벌’을 유치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고 해변 문화의 메카로 떠올랐다. 서피비치 제공
2015년까지만 해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고 군사용 철조망만 덩그러니 쳐져 있던 강원 양양의 해변. 이제는 구릿빛 피부의 젊은 서퍼들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낮의 백사장에는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고, 해먹이나 비치베드에 드러누운 사람들은 코로나 맥주와 수제 버거를 즐긴다. 밤이 되면 클럽 DJ의 선곡과 파도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페스티벌과 댄스파티의 향연이 펼쳐진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가 넘던 초고령 동네가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 2030 청춘들의 집결지로 급부상한 것이다. 양양이 ‘서핑족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비결과 로컬 비즈니스 전략을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281호(2019년 9월 15일자)에서 분석했다.

○ 콘텐츠보다 플랫폼에 집중해야


인적 드문 시골이었던 양양이 갑자기 동해안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양양을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이 하나의 이유다. 원래 서울에서 5시간은 족히 걸려야 도착했던 양양을 교통 체증이 없는 경우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교통만으로 양양이 속초, 강릉 등 쟁쟁한 주변 휴양지들을 제치고 동해안의 명소가 된 배경을 설명할 수는 없다. 양양이 점점 피서객이 줄어드는 동해안 바다의 불황을 피해갈 수 있었던 차별점은 바로 ‘서핑’에 있다.

양양 서피비치의 박준규 대표는 허허벌판이던 800m 길이의 군사작전 지역을 임차해 국내 처음으로 ‘서핑 전용 해변’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서피비치는 개장 4년 만에 연간 55만 명이 찾고 인스타그램에 매일 1000건이 넘는 인증샷이 올라오는 양양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 토박이인 박 대표는 1996년부터 국내 2호 스키장이었던 고성 알프스리조트에서 장장 8년간 스노보드를 가르쳤다. 그는 알프스리조트가 대한민국 스키의 성지이던 시절부터 경영 악화로 2006년 문을 닫기까지 흥망성쇠를 목격했다. 리조트의 쇠락을 지켜보면서 그는 스키나 스노보드 같은 특정 ‘콘텐츠’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이 레저가 더는 멋있어 보이지 않을 때 사업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콘텐츠보다는 리조트라는 ‘플랫폼’에 집중해야 오래갈 수 있음을 배운 것이다. 스키장에서 반드시 스키와 스노보드만 타야 할 이유는 없었다. 드넓은 설원과 광장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공간이 가진 좋은 가치를 백분 활용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공간을 활용한 플랫폼 사업을 꿈꾸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2011년 해운대에서 막 시작한 스마트 비치 사업에 대해 알게 됐다. 백사장을 삥 둘러싼 7000여 개의 리조트와 호텔 및 모텔 객실 등을 포함한 500개의 식음료(F&B) 매장을 하나로 묶어 스마트 결제가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만드는 사업이었다. 해변을 경험해 보고 싶었던 그는 대뜸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 해운대의 광고 유치 업무를 자원해 맡았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바다가 흥하려면 ‘2030 청춘’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광고주가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타깃이었기 때문이다.

○ 도시에서 꿈도 못 꿀 경험을 제공하라


부산에서 약 3년간 경험을 쌓은 박 대표는 다시 강원도로 향했다. 그러고는 어떻게 하면 강원도 바다에 사람들이 모이게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강원도의 지역성을 살리고 싶다 해서 감자나 옥수수만 팔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파라솔과 튜브, 횟집만 즐비한 바다도 따분하긴 마찬가지였다. 로컬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 훌쩍 떠나고 싶을 만한 완전히 낯선 공간이어야 했다.

박 대표는 해변의 가치를 극대화해 전 세계 휴양객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동남아를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양양 보라카이’라는 기획안을 바탕으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양양의 군사작전 지역에 공유수면허가를 신청하고 해변을 임차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 로컬 비즈니스가 성공하고 고객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도시가 줄 수 없고, 고객이 로컬에 기대하는 것을 줘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구체적으로 28∼38세의 구매력 있는 고객을 타깃으로 잡고, ‘100% 대한민국 청춘의 소유물’인 바다를 만들기로 했다. 박 대표가 본 밀레니얼 세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최선을 다해 놀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힘든 일상생활과의 ‘단절’을 원했고, 로컬은 그 열망을 가장 잘 충족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음으로 그는 주변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오래 돌아가더라도 지역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역에는 기존에 일하던 분들이 있고, 새로운 로컬 비즈니스는 의도치 않았더라도 이들의 생활방식에 소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대신 주변 상권의 어르신들과 여행을 다니고, 지역 환원을 위해 마을발전기금이나 장학금을 기부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할애해 원주민과의 소통에 나섰다. 마지막으로 도시보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로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료들의 근무 만족도에 많은 신경을 썼다. 열악한 인프라의 시골살이와 낮은 처우, 불안정성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료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3개월 무급휴가 등의 혜택도 줬다. 박 대표는 “로컬에서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성공할 수 있다”며 “계속해서 2030 고객의 사랑을 받고, 지역 사회에 도움을 주고, 동료들이 떠나지 않게 노력한다면 양양의 해변이 ‘100년 가는 관광지’가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양양=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서피비치#강원 양양#2030 핫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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