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올덴부르크 국립극장 산하 발레단이 한국 전통춤에 기반한 창작무용 ‘달에 홀린 피에로’(Pierrot Lunaire)를 2019∼2020 시즌 정기공연으로 선보인다. 안무를 맡은 이혜경 안무가(45·사진)는 2015년 오스트리아에서 무용극 ‘결혼’의 안무를 지도하며 한국 무용가 최초로 유럽 국립극장의 시즌 공연을 맡았다.
10월 12일 첫 공연을 앞두고 독일 현지에서 안무를 지도 중인 이 안무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한국 춤을 알릴 수 있어 감격스럽다. 당당하게 실력으로 박수받겠다”고 했다.
그가 구상한 ‘달에 홀린 피에로’는 벨기에 시인 알베르 지로의 작품 ‘달에 취하여’를 한국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그는 “지친 현대인을 상징하는 피에로에 한국적 움직임과 미장센을 입혔다”며 “무용수들은 감태나무 지팡이를 짚고 등장하는 피에로의 모습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 무용이 해외 축제, 투어에서 단기 공연을 한 적은 많지만 유럽 내 국립극장이 한국 춤 안무가를 공식 초청해 ‘간판 창작물’을 선보이는 건 파격이자 이례적인 일이다. 공연은 2020년 5월까지 총 15회가 예정돼 있다.
무용수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건 날숨 호흡법이다. 한국 춤은 호흡을 뱉어 ‘비워진 상태’를 최고의 멋으로 여기는 반면, 힘과 기술을 강조하는 유럽의 무용은 상대적으로 날숨 운용에 서툴다. 이 안무가는 “숨을 내뱉고 근육이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유독 낯설어해 이를 중점적으로 지도한다. 두 달 가까이 매일 3시간씩 가르쳤더니 무용수들이 이제 좀 춤을 이해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를 초청한 발레단장 앙투안 쥘리도 “무용수들이 한국 춤의 질감, 철학, 호흡법을 통해 움직임의 어법을 확장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럽의 국립극장에 한국 춤 공연을 올리는 게 믿기지 않지만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 그는 “정말 소중한 기회다. 이번에 한국 춤이 인정받아야 지속적으로 우리 춤을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콧대 높은 관객도 걱정이다. 1833년 개관한 독일 올덴부르크 국립극장은 중소 도시에 있지만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무용 매거진 ‘탄츠(Tanz)’는 올덴부르크 발레단을 ‘올해의 5대 유럽무용단’으로 선정할 만큼 무용수의 실력도 출중하다. “매일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다”는 말에서 그가 느끼는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목표는 원대하면서 명료하다. ‘한국의 아크람 칸’이 되는 것이다.
“인도 전통춤을 현대화해 세계적인 안무가가 된 아크람 칸이 간 길을 걷고 싶어요. 한국 전통춤이라고 해서 이국적 색채만 강조하거나 보여주기식 안무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한국 춤을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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