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개국 물가 하락기 분석
“주택 등 자산 가격하락 안해… 1990년 이후 일본 정도만 디플레”
민간기관선 “곳곳 징후” 논쟁 지속
한국은행이 올해 말에는 물가상승률이 반등할 것이라며 현 상황은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놨다. 세계 주요국의 물가 하락 사례와 비교했을 때 지속 시기와 하락폭 모두 디플레이션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사실상 마이너스(―)까지 추락하며 ‘D(디플레이션)의 공포’ 우려가 나오자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간 연구기관은 물론이고 한은 내부에서조차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논쟁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분위기다.
한은은 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과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대만 등 물가 하락을 겪었던 아시아 5개국의 물가지수를 분석한 ‘주요국 물가 하락기의 특징’이라는 자료를 배포했다.
한은은 자료에서 “1990년대 이후 디플레이션이라고 진단할 수 있는 건 일본 정도로 국한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0.3%,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0.6%에 머물렀다. 한국은 비록 8월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일본의 사례와는 아직 거리가 멀어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은은 디플레이션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주택 등 자산 가격의 조정이 수반돼야 하는데 아직 한국은 그런 단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제 기준을 적용해 봐도 한국은 아직 디플레이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년 이상 물가가 하락했을 때를 디플레이션으로 본다.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평가하는 IMF의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DVI)로도 한국은 발생 위험이 ‘매우 낮음’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한은과 정부가 이 문제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디플레이션이 ‘자기실현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번 경기나 물가 하락 전망이 확산되면 가계가 저축을 늘리며 소비는 최대한 늦추게 되고 이는 물가를 더 낮추는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들의 물가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 인플레이션도 처음 1%대로 하락하면서 이 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실제로 디플레이션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조동철 위원은 5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의 실제 물가상승률이 0%에 너무 가까워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에는 현대경제연구원이 “공급과 수요 측면 양쪽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약화돼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점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플레이션에 해당되는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등 경기 둔화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정책을 동원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잠시 유지하겠지만 곧 반등할 것이라고 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27일 기자단 워크숍에서 “연말이나 내년에 가면 물가상승률이 1% 내외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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