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정부 초기 문민 개혁은 거침이 없었다. 당시 개혁 주도 세력들은 일본 에도막부 시절 정치가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1751∼1822)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불씨’를 탐독했다. 우에스기는 당시 조그만 번(藩)의 영주였지만 과감한 정치 개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영지를 재건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인을 묻는 일본 기자단에 언급한 인물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우에스기의 일대기는 개혁 드라이브의 교과서로 꼽혔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제압하면서 파격적인 행정쇄신과 산업장려 정책을 성공시켰다. 핵심적 메시지는 개혁 성공은 결국 사람, 개혁 주체에 달렸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도 ‘누가 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개혁 주체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대중은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속 우에스기는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할 때에는 우선 부탁하는 사람부터 직접 해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해보이고 말하고, 들려주고 시킨다’라는 말도 있다. 나도 그 식으로 해보겠다.”
우에스기 모델에 고무된 YS 정부에서 의혹에 휩싸인 청와대와 내각 인사들은 상당수 낙마했다. 그 기준이 적정했는지 논란도 많았고, 개혁 드라이브가 먼저 아군을 친 뒤 정적을 제거하려는 음모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적어도 정권 초반에는 제 살을 도려내는 결기를 보여줬다. 그 정치적 동력이 있었기에 공직자 재산공개와 군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개혁 과제들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조국 사태로 수세에 몰린 여권은 ‘검찰 개혁’ 카드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조 장관 가족 의혹을 수사하는 윤석열 검찰은 검찰 개혁을 가로막는 신적폐 세력으로 규정됐다. 지난달 28일 친문 지지자들이 모인 대검청사 앞 촛불집회는 이런 프레임 전환을 공표한 자리였다. 적폐 청산의 1막이 이전 정권이라면 2막은 윤석열 검찰이다. 이전 정권의 후예인 자유한국당은 한때 이전 정권 청산에 앞장섰던 윤석열 검찰과 이른바 ‘내통’하는 사이로 급반전됐다.
하지만 이 공식은 착각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세력이고, 더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그나마 정치적 자산이었던 공정·정의 가치도 조국 사태로 무너졌다. 이런데도 우리 편 흠결은 ‘인륜’이니, ‘확인되지도 않았다’는 식으로 가리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정의당에 탈당계를 냈다가 접은 진중권도 “조국 사태는 공정성·정의의 문제이지 결코 이념·진영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일 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미 기울어진 편 가르기에 법치는 바로 설 수 없을 것이다.
혁명은 일거에 판을 바꾸는 것이지만 개혁은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며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무력화하는 과정이다. 개혁은 혁명에 비하면 지구전에 가깝다. 이 정부가 ‘촛불혁명’을 강조한다고 해서 ‘혁명군’이 될 순 없다. 개혁의 시작은 권력 주변의 엄격하고 단호한 의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검찰 개혁이 절절하고, 검찰 등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도 중요하지만 민주적 통제를 하는 주체가 수사를 받고 도덕성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개혁을 할 수 있겠나.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려운 이유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소설 ‘불씨’는 개혁 동지의 비리를 접한 우에스기의 단호한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의기투합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잘못까지도 감싸주기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다시 한번 강 상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초심(初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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