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국체전 땐 마땅한 경기장도 없어 어망 주워다 야구장 펜스 만들어 경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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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전국체전 기획-운영 배순학 대한체육회 고문 밝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대한체육회 사무실에서 배순학
대한체육회 고문이 전국체전의 100년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대한체육회 사무실에서 배순학 대한체육회 고문이 전국체전의 100년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제1회 전국체전인 전조선야구대회는 축구경기장밖에 없던 배재학당에서 망가진 어망을 주워 펜스를 만들고 설치한 뒤 진행했습니다. 이미 야구장이 있었지만 일제가 만든 시설을 피해 찾다 보니 그렇게 했어요.”

30년 넘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를 주관한 배순학 대한체육회 고문(78)은 27일 본보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지낸 배 고문은 1960년 대한체육회에 합류해 전국체전 등을 주관한 체육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과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우리 민족만의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체감했고, (국민을 건강하게 한다는) ‘건민(健民)’의 중요성도 커졌다”며 “1920년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가 발족해 전조선야구대회를 치르며 좌절감과 울분을 체육으로 풀었다”고 말했다.

배 고문은 “동아일보가 1920년 4월 10일부터 3회에 걸쳐 보도한 ‘체육기관의 필요를 논함’이라는 기사가 전국체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며 “조선체육회 발기인에도 동아일보 기자들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배 고문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공개했다. 그는 “우체부와 인력거꾼은 달리기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는 ‘프로’ 의식을 가져 초창기에는 (아마추어 경기인) 전국체전에 참가하지 않았다”며 “반세기 전만 해도 참가단의 깃봉을 직접 나무로 깎아 만들었고 실내경기인 핸드볼을 흙바닥에서 진행했다. 그럼에도 국민적 관심은 뜨거웠다”고 말했다.

전국체전의 규모가 커지면서 1966년 태릉선수촌, 1970년 태릉국제수영장 등 체육 관련 시설이 생겼다. 배 고문은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하던 선수들이 체육 관련 시설이 만들어지자 더 약진했다”며 “1회 개최지였던 서울에서 100회 대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존과 공영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전국체전#대한체육회#배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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