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범인 19년간 수감뒤 가석방… 최근 경찰에 “범행 인정한적 없다”
경찰, 이춘재 진술 신빙성 계속 조사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사진)가 경찰이 화성 사건의 모방 범죄로 결론 내린 8차 사건을 본인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사실이 드러났다. 8차 사건은 화성 사건 10건 중 그동안 유일하게 경찰이 해결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4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춘재는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에서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 1988년 9월 16일 발생한 8차 사건이 본인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당시 이춘재는 다른 화성 사건을 자백할 때와 마찬가지로 종이에 약도를 그리며 8차 사건 범행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차는 피해자 박모 양(13)이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진안동) 자신의 집에서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다른 화성 사건과 달리 피해자의 손발이 묶여 있지 않았고, 야외가 아닌 유일하게 피해자의 집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모방 범죄로 결론 내렸다.
사건 발생 다음 해인 1989년 7월 경찰은 윤모 씨(당시 22세)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당시 윤 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 몸이 불구라는 신체적 특징 때문에 피해자가 고발하면 쉽게 경찰에 잡힐 거라는 생각에 살해했다”고 범행을 인정했다.
당시 경찰이 윤 씨를 진범이라고 판단한 물리적 증거는 박 양의 방에서 발견된 범인의 음모뿐이었다. 경찰은 음모에 카드뮴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점에 착안해 중금속에 노출된 공장 직원이 범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당시 농기계 수리공이었던 윤 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체모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 등을 분석하는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을 통해 윤 씨의 음모와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경찰에 보냈다. 당시에는 이춘재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한 유전자(DNA) 분석기법이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다.
8차 사건의 진범이 본인이라는 이춘재의 자백이 맞는다면 부실한 경찰 수사로 윤 씨가 19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2002년 윤 씨의 여죄를 조사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그를 만난 경찰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씨가 ‘나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해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저지른 게 아니다. 형들이, 형사님들이 나를 여기다 잡아넣었잖아’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 씨는 이후 20년으로 형량이 감형됐다가 만기 출소일을 8개월 앞둔 2009년 8월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최근 이춘재의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찾은 경찰관이 “왜 그때 범행을 인정했느냐”고 묻자 “내가 언제 범행을 인정했냐. 당신들이 인정했지”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춘재가 경찰 조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거짓 자백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신빙성 여부를 계속 조사한다는 입장이다. 이날도 이춘재가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에서 11차 조사를 진행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충격적인 자백인 만큼 자백의 신빙성과 객관성을 수사 기록과 비교해 사실 여부를 면밀히 확인해 진상 규명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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