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7일 한 베트남 여성이 임신 확인 검사를 받으러 서울 강서구의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배 속 태아를 잃는 의료사고가 있었다. 검사를 진행한 의사는 임신 6주 진단을 내리고 영양제 투약을 처방했는데 분만실의 간호사가 이 여성을 ‘계류유산’(배 속 태아가 이미 숨졌는데도 자궁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 환자로 잘못 알게 되면서 낙태수술로 이어진 것이다. 이 여성은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한 간호사의 말을 듣고 “영양제를 맞아야 한다”고 했는데도 의료진은 환자 확인에 소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내용을 본보가 보도한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병의원에 공문을 보냈다. 인증원은 공문을 통해 “환자 미확인에 따른 안전사고 지속 발생 주의경보를 다시 안내한다”며 “환자 확인 절차 누락으로 환자에게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사고 예방을 위해 힘써 달라”고 강조했다. 인증원은 앞서 2월에도 같은 내용의 주의경보를 발령했다.
본보 취재 결과 2월 주의경보 발령 이후에도 환자 미확인에 따른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6월 16일 한 병원 간호사는 의사에게 수혈 환자 2명을 안내하며 “2명 모두에게 수혈해 달라”고 전했다. 그런데 의사는 폐암으로 입원한 B형 혈액형의 60대 남성 환자에게 A형 피를 수혈했다. 이 환자는 체온 상승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다 3일 만에 용혈반응(적혈구가 파괴돼 세포질이 혈장 안으로 녹는 현상)이 생겨 사망했다.
인증원이 작성한 ‘환자 확인 절차 누락에 따른 환자 안전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환자안전법이 시행된 2016년 7월 이후 3년간 보고된 환자 확인 절차 누락으로 인한 사고는 939건에 이른다. 2017년 179건에서 2018년엔 381건으로 늘었고 올 들어서는 8월까지 365건의 사고가 접수됐다. 의료기관이 스스로 보고한 것만 수치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발생한 사고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환자안전법상 보고 책임은 의료기관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이러다 보니 환자 안전과 관련된 사고가 나도 해당 의료기관은 사고 진상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강서구 산부인과 ‘과실 낙태’ 사고 내용 또한 보건복지부에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2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보고를 일부 의무화하는 ‘환자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남 의원은 “강서구 산부인과 사건과 같은 중대한 사고일수록 보고가 누락되는 경우가 발생해 환자 안전사고 예방 및 재발 방지에 한계가 있다”며 “환자안전법 개정안의 빠른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서구 산부인과의 과실 낙태사건이 보도된 날 기자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독자들의 e메일 수십 통을 받았다. 한 독자는 “지금 아내가 다니는 산부인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고 했다. 주의경보 안내를 뛰어넘는 의료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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