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 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며 ‘민주화운동보상법’의 일부 조항을 위헌 결정한 것을 따르지 않은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7단독 권순호 부장판사는 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A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지난달 각하했다.
A 씨는 2013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고,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다. 이후 A 씨는 보상금과 별개로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5월 패소 판결을 확정 받았다. 이는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으면 재판상 국가와 화해한 것으로 봐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가 스스로 ‘사법부의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 뒷받침 협력 사례’로 꼽은 판결 중 하나다.
하지만 헌재는 지난해 8월 30일 민주화운동보상법상의 화해 간주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고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결정했고, A 씨는 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권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헌재 결정은 이 사건 법률 조항의 일부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결정의 실질은 한정 위헌 결정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밝혔다. 이어 “(한정 위헌 결정이)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의한 위헌 결정으로 허용된다면 이는 부당하다”고 했다.
한정 위헌은 동일한 법조항을 놓고 헌재가 ‘만약 이렇게 해석한다면’이라는 전제 아래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것인데, 법원에서는 법률 해석은 사법부의 고유의 영역이라며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본보 취재 결과 지난해 8월 30일부터 지난달까지 민주화운동보상법 관련 소송은 총 71건이었다. 그중 A 씨의 사건을 제외한 70건 모두 법원은 헌재의 위헌 결정을 존중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헌재 결정 1년여 만에 정반대되는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헌재 결정대로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을 뒤집을지 등을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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