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한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춰 활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개인 혹은 기업의 역량이 달라진다. 이 역량은 다가올 위기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데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최신 흐름과 정보를 얻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경기콘텐츠진흥원(이하 경콘진)이 스타트업을 위한 성장 노하우를 전달하고자 다양한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 중 창업 및 전문가를 초청해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테크(TEC – Tech, Experience, Content) 콘서트'는 기술·창업 분야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테크 콘서트는 이름 그대로 기술과 콘텐츠에 대한 강연으로, 지난 7월 2일부터 세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이미 지난 2년간 총 24회에 걸친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1,520여 명이 청중으로 참여한 바 있다.
테크 콘서트 시즌3는 7월부터 11월까지 고양, 광교, 시흥(서부), 의정부(북부), 부천 등 총 5개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지역별 특화된 창업 정보를 담아 진행한다. 강연 주제는 지역별 특색과 대상을 살렸다. 고양은 '뉴미디어 및 모바일', 광교는 'VR·AR(가상·증강현실)', 시흥은 '사물인터넷(IoT)', 부천은 '하드웨어', 의정부는 '디자인' 등 다양한 주제로 열린다.
지난 10월 10일,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 다목적홀에서 'JUST JERK CREW(이하 저스트 절크)'의 리더 성영재가 테크콘서트 시즌3 10월 첫 강사로 나섰다. JUST JERK CREW는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전문 안무가들이다. 국내에서 일반 댄스 장르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활동을 시작, 국내 대회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회, 전세계 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지난 2017년 미국의 유명 TV 프로그램인 'America's Got Talent 시즌 12'에 출연해 화려한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몰랐던 소년
저스트 절크의 성영재 리더는 자신의 나이부터 밝혔다. 그는 "1992년 2월 22일에 태어난 제 나이는 올해로 28살입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어요. 아직 어린 제가 성공하는 방법을 말씀드리는 것보다, 그저 제 경험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 보다 몸을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유독 연필 잡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웃음). 초등학교부터 운동을 시작해 고등학교까지 계속하며 선수 생활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할 무렵, 집 안에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졌고,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어요. 당장 생계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했어요"라며, "그때 참 많이 방황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사고도 많이 쳤어요. 싸움도 하고… 부모님이 경찰서로 오는 일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정말 큰 사고가 한번 났습니다. 저와 싸운 친구가 3일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는 일이 생어요. 정말…, 큰일이었습니다. 뒤늦게 후회했죠. '내가 왜 그랬을까',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라고. 친구가 깨어나지 못하는 3일 내내 울면서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부모님께서 자괴감에 빠져 있는 제게 와서 손을 잡아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네 잘못만은 아니라고. 채찍과 훈계가 아닌 안아주는 온정을 처음 느꼈던 것 같습니다."
"4일째 되는 날 친구가 의식을 차렸습니다. 의식을 차린 친구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잘못을 빌었어요. 그 친구와는 지금도 연락합니다. 무사히… 잘 마무리된 것이죠. 이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정신 차리고, 철이 든 시점이."
큰 사고를 겪고 나서 성 리더는 뒤늦게 결심했다. 뭔가 해보겠다고. 하지만,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놓아버린 연필을 다시 쥐기에도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에도 돈이 필요했다. 그는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주유소, 인형을 쓰는 행사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다시 세상 속에서 사람과 만났다. '혼자'가 아닌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다시 배운 셈이다.
인정받은 춤 실력, 하지만 여전히 '혼자'였던 시간
그러던 그에게 예체능, 음악 공부를 하고 있던 동창이 찾아왔다. 가수와 드러머를 꿈꾸던 친구들은 그에게 음악을 권했다. 마침 무언가를 찾고자 했던 그는 마이클 잭슨의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마이클 잭슨의 공연, 무대, 춤을 보고 난 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가수와 댄서의 차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춤을 추는 가수가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죠(웃음). 예상대로 엄청난 반대를 받았습니다. '넌 무슨 그런 일을 하겠다는 거야!'라는 말도 들었죠. 부모님의 반대가 커지면서 다시 또 혼자라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대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기획사들의 오디션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한 대형 기획사에 합격해 지금 아이돌이 겪는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연습생 생활을 거치면서 확신했어요. 아, 내가 원하는 것은 가수가 아니라 춤이구나. 연습생 마지막에 기획사가 계약서를 내밀었을 때,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저는 댄서가 되겠습니다라면서요."
"그 때 나이 20살이었습니다. 연습생 시절 오기로 연습에 매달렸던 덕분인지, 저를 좋게 봐주셨던 연습실 원장님이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쉽게 말해, 연습실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2명을 담당하게 되었고, 열심히 알려드렸습니다. 처음 받은 월급은 5만 원이었어요(웃음). 점점 좋은 강의로 소문이 나면서 4명, 10명, 20명… 계속 수강생이 늘었습니다. 참 좋았어요. 거울이 있는 연습실을 제가 사용할 수 있고, 그 시간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누구에게나 행복이다. 다만, 그는 여전히 거울 앞에 늘 혼자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팀원들과 함께 도전한 3번의 세계대회, 그리고 우승
혼자 하는 춤, 혼자 하는 공연은 한계가 명확했다. 댄서는 관중 앞에 나서야 한다. 공연장 무대 위에 서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어려웠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친구, 춤 동료, 지인들을 찾아갔다. 그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혼자 생활하고, 혼자 춤 추고, 혼자 안무를 결정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팀원과 대화를 나누고, 합을 맞추고,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안무를 짜는 것은 또 다른 세계였어요. 그렇게 팀원을 찾아 지금의 저스트 절크 멤버 5명이 모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회에 나가자고. 그렇게 출전한 국내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웃음).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돈이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실력 좋은 강사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월 1,000만 원을 벌었습니다.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의 댄서가 벌 수 있는 액수로는 상당히 많죠. 그때 팀원들과 말했습니다. 이대로 돈을 쫓게 될 것 같다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시아 대회에 도전하기로 결정했죠."
"아직 국내 인식과 인프라, 정서는 댄서를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 댄서들은 절실함 속에 삽니다. 그 절실함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시아 무대에서 실력의 격차를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처음 나간 아시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음 목표는 세계 대회였죠."
"세계 대회는 달랐습니다. 3년에 걸쳐 총 3번을 도전했습니다. 2014년, 2015년, 2016년. 처음 나간 2014년 대회에서는 주변에서 '동양인 주제에…'라는 느낌도 많이 받았습니다. 실력차이도 느꼈죠. 흑인들 특유의 탄력과 체력을 우리들이 쫓아가기 버겁다는 것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방법은 하나였어요. 팀원들과 얘기했죠. 별 수 있냐? 그만큼 더 연습하자라고."
"2번의 도전으로 대회에 익숙해졌고, 2016년 3번째 참가하면서 안무에 변화를 줬습니다. 해외에서는 대부분 댄스를 가사에 맞춥니다. 가사 내용에 합을 맞추는 형태로 틀을 짜는데요. 우리는 가사가 아닌, 빠른 리듬에 맞춰 몸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안무를 짰습니다. 승부를 걸었던 건데요. 이게 주목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3번째 도전만에 우승을 차지한 뒤 한국에 돌아오자, 전화가 걸려왔어요. 미국 NBC의 인기 프로그램 'America's Got Talent(이하 아메리카 갓 탤런트)'의 섭외 전화였습니다."
춤 하나만을 보고 도전한 10년
저스트 절크는 이 때부터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유튜브의 영향이 컸다. 2016년 세계대회 우승할 당시 영상이 입소문을 타고 국내외로 퍼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무대를 보면서 수많은 사람이 감탄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아메리카 갓 탤런트 섭외 전화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셈이다.
그는 "다행히 아메리카 갓 탤런트는 1년의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1년 동안 팀원들과 돈을 벌었어요. 비행기 티켓 구매 비용부터 한달간 머무를 숙소, 자동차 대여비용, 식사비용 등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다같이 벌어서 저금하고. 1년 동안 준비하며 왜 댄서라는 직업을 선택해서 이 고생을 하나 후회도 했지만, 초심, 처음을 생각했습니다. 첫 월급 5만 원에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렸죠."
"그렇게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출연하게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2016년 세계대회 영상을 더 많은 분들이 보게 되셨고, 국내외에서 공연 문의가 찾아왔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도 공연했구요. 사실 저희들은 그때까지도 공연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웃음). 2017년 한국에 돌아온 뒤부터 섭외 전화를 엄청 받은 것 같아요. 아마… 4개월만에 2억 원을 벌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로 팀원들에게 동의를 구한 뒤, 첫 연습실을 냈어요."
"연습실을 마련하고, 정식 학원을 등록하고, 팀원들과 첫 수강생을 모집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댄서라는 직업을 선택한 뒤, 주변의 만류와 걱정 속에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잖아요. 제가 댄서로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춤 하나만을 보고 국내, 아시아, 세계 대회를 함께했던 우리 팀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강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무대 가운데 선 채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어렵지 않다.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뒤에, 후회하지 말고 그대로 정진하라는 것. 그는 "주변 시선에 맞춰 행복을 찾고, 성공의 기준선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 나 스스로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끊임없이 정진하길 바람이다. 그게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라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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