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좋은 아이디어(창의성), 뛰어난 인재, 풍부한 자금, 효율적인 시스템 등의 대답이 주로 나온다. 어떤 사람은 “창작은 종합예술이라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란 답을 내놓기도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지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빠질 경우 결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는, 궁극의 요소 말이다.
해답을 찾기 위해 몇 달 동안 틈나는 대로 자료를 찾고 인터넷을 항해했다. 탐색을 계속해 가니 해답이 대략 드러나는 것 같았다. 많은 콘텐츠 기업이 좋은 아이디어를 뜻하는 ‘스토리’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토이스토리’로 유명한 픽사의 모토는 ‘스토리가 왕’이다. ‘왕좌의 게임’ ‘소프라노스’ ‘밴드 오브 브러더스’ ‘체르노빌’ 등 세계적 히트 드라마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드는 HBO 관련 기사에는 “멍청아, 중요한 것은 스토리야”란 대목이 가장 강조돼 있었다.
그런데 계속 파고들어 갈수록 어찌 보면 당연한, 좀 더 심층적인 것이 드러났다. 픽사의 공동 창업자인 에드 캣멀은 뛰어난 인재가 좋은 아이디어보다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그는 저서 ‘창의성을 지휘하라’에서 “아이디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사람이 없으면 아이디어도 없다”고 단언했다. HBO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전 회장 마이클 롬바르도는 잡지 ‘배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성공 비결은 최고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기업들이 인재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상식적’이다. 상식이지만 보통 기업들이 따라 하기 힘들다는 점이 있긴 하다. 이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를 발굴한 다음, 자율성을 주고 최고의 작품을 만들도록 지원한다. 그리고 기존의 기업들과 조금 다르게 내부 경쟁보다 협업을 강조하고, 높은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방송계나 영화계는 예전부터 프로젝트에 따른 이합집산이 많은 곳이다.
협업과 직업 안정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캣멀에 따르면 영화란 소수의 천재가 아니라, 다수의 우수한 인력이 오랜 기간 동안 함께 만드는 ‘복잡한 예술작품’이다. 그래서 ‘슈렉’과 ‘쿵푸팬더’를 만든 드림웍스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금융위기가 왔을 때 연봉을 동결하는 대신 직원을 줄이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전사적 협업(collaboration)은 21세기 인적자원 관리의 핵심적 요소로 다뤄진다. 뒤집어 말하면 최근의 조직관리는 협업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에도 큰 관심을 기울인다. 소수의 나쁜 리더 때문에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늘어난다면 그 회사의 미래가 흔들리지 않겠는가. 이에 따라 요즘엔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는 리더나 조직 구성원이 조직에 끼치는 해악을 수치화하거나,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조직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먹튀’ 경영자(약탈적 리더)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기도 한다.
내가 만났던 성공한 리더의 상당수는 이미 이런 점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 것인지, 어떤 사람을 리더십 레벨에 올리지 말아야 할지를 분명히 인식했다. 평사원 출신의 한 전직 대기업 대표는 “실력 없는 사람은 사내정치 같은 부수적인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조직을 망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도 사람보다 다른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내가 가장 동의하는 캣멀의 말은 다음과 같다. “좋은 아이디어를 평범한 팀에 맡기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반면 평범한 아이디어를 탁월한 팀에 맡기면, 그들은 아이디어를 수정하든 폐기하든 해서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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