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제주 잘 여행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넓고 볼 것 많은 제주에서 아무 계획 없이 이동하다가는 아까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고 싶은 구역 하나를 정해 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요즘 제주 서남부는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관광지 사이가 가깝고, 어딜 가도 다른 관광지 모습이 보이기에 색다른 느낌이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추천 관광지를 나눴다.
떠오르는 해
오전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빌렸다면 송악산(서귀포시 대정읍 송악관광로 421-1)으로 먼저 향하자. 송악산은 언제라도 둘러보기 좋지만 한가하게 걷기에는 오전만큼 좋은 때가 없다. 주차하기도 편하고 별도의 입장료도 없다. 송악산 분화구를 중심으로 주변을 걷는 코스로 30∼40분(총 길이 2.8km)이면 충분하다. 물론 둘레길 전망이 빼어난 덕분에 풍경에 심취해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송악산 둘레길은 나무 덱이 있어 걷기에 편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방산과 단산, 용머리해안은 물론이고 바다 너머로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까지 볼 수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주에 온 것을 실감나게 한다. 송악산 해안가 절벽에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제주 사람들을 강제 동원해 뚫은 동굴이다. 걷다 보면 방목해 기르는 말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해안가와 둘레길 그리고 평화롭게 거니는 말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해안 풍경에 마음이 사로잡힌 채 걷다 보면 어느새 숲길로 들어선다. 햇살이 점점 따가워질 즈음에 숲길이 나타난다. 해송산림욕장으로도 불리는 송악산은 소나무숲길의 인기가 높다. 맨발로 걷고 싶을 정도로 푹신푹신한 감촉이 인상적이다. 송악산 정상부는 생태계 복원을 위해 내년 7월까지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하고 있어 당장은 들어갈 수 없다.
높은 해
해가 중천에 떴다. 아무리 가을이라고 하지만 햇살이 따갑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럴 때 곶자왈만큼 좋은 피난처는 없다. 곶자왈은 화산 활동으로 생긴 요철 지형의 숲으로 제주에만 존재한다. 하나의 숲에 다양한 기후대의 식물이 공존한다. 화순곶자왈(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2045)은 전체가 9km에 달할 정도로 길다. 세 종류의 코스가 있고 기본 코스는 걸어서 30∼40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다. 완만한 코스가 대부분이어서 아이들과 같이 걸어도 괜찮다. 곶자왈을 걷다 보면 세계적으로 희귀한 식물들을 볼 수 있어 눈이 즐겁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곶자왈의 생태계는 몽환적이다. 화창한 날도 좋지만 비가 온 뒤 또는 안개가 조금 낀 날에는 더욱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운이 좋다면 걷다가 방목하는 소를 만날 수도 있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진드기 등 벌레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벌레기피제 등을 뿌리고 가는 게 좋다.
지는 해
해가 점점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면 서둘러 대평포구로 가자. 이곳에는 일몰 사진 명소인 박수기정(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1008)이 있다. 약 100m 높이의 수직절벽인 박수기정은 위에 올라가 보는 해안 풍경도 좋지만 대평포구 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없이 좋다. 포구 아래 해안에 서면 병풍처럼 펼쳐진 박수기정의 웅대한 모습이 보인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노을과 해변 물웅덩이에 비친 노을을 절벽과 함께 사진에 담으면 멋진 일몰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제주에 수많은 숙소가 있지만 최근 안덕면에 자리 잡은 제주신화월드(서귀포시 안덕면 신화역사로304번길 38)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리조트로 객실만 2000개가 넘는다. 제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워터파크부터 두 종류의 테마파크(라바, 트랜스포머), 콘도형 시설(서머셋관)과 호텔형(신화관, 메리어트관, 랜딩관)까지 네 종류의 숙박시설, 쇼핑 공간 등이 한곳에 있다. 한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 호캉스로 제격인 곳이다. 미슐랭 스타 셰프가 있는 중식당을 비롯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70여 개의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있어 굳이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활짝 핀 해
숙소에서 푹 자고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면 송악산 인근 단산(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도전을 추천한다. 해발 158m의 나지막한 산이다. 단산에 오르면 제주 서남부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동쪽으론 산방산, 남쪽으로는 형제섬과 송악산, 가파도가 있고 서쪽으로는 모슬포항이 보인다. 높이가 낮다고 얕잡아 보면 안 된다. 꽤 가파른 오르막에 어느새 숨이 가빠 오고 이마에 땀이 흐른다. 경사도 높은 편이다. 정상 부근은 좁아 주의가 필요하다.
구름에 숨은 해
제주 전통의 관광지인 용머리해안(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도 놓치면 섭섭하다. 용머리해안은 오랫동안 제주의 대표 관광지였다. 새로운 곳만 찾는 추세에 용머리해안은 어느새 사람들의 뒷전에 밀린 분위기다. 하지만 용머리해안은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기분에 따라, 동행에 따라 달라진다.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 가판도 매력적이다. 용머리해안에서 바라보는 송악산의 모습도 색다르다.
○ 여행 정보
팁+ △박수기정 일몰샷을 찍으려면 샛길을 따라 난 해안암벽으로 내려가야 한다. 크게 위험하진 않지만 언제 큰 파도가 몰려올지 모르니 주의하자. 기자는 사진을 찍다 신발과 바지가 다 젖었다. △단산은 날씨가 흐릴 땐 산방산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땐 올라가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자. △안덕면에는 수많은 카페가 있다. 풍광이 좋은 곳은 사람도 많으니 북적이는 것이 싫다면 조그마한 카페도 좋다. △제주신화월드는 정말 넓다. 자칫 길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자신 없다면 호텔 직원에게 꼭 길을 물어보자.
감성+ △음악: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5번 4악장. 풍광이 뛰어난 제주의 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이 음악을 찾을 수밖에 없다. 맑은 날보다는 조금 흐린 날 더없이 잘 어울린다. △책: 엄마는 해녀입니다(고희영 지음·에바 알머슨 그림) 어른들도 읽기 좋은 동화책이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란 말이 와 닿는다.
여행지 지수(★ 5개 만점)
△일몰샷 찍기 ★★★★★ △풍경 보면서 걷기 ★★★★★ △카페 돌아보기 ★★★★★ △방목하는 소와 말 관찰하기 ★★★★ △제주만의 멋진 자연 둘러보기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