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사진)가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22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참석하는 대신 행정부의 2인자인 이 총리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7월 한일 갈등 이후 사실상 최고위급 특사 자격으로 이 총리가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참석 검토했던 文, 물밑 조율 끝에 이 총리 파견
총리실은 13일 “이 총리가 나루히토 천황(일왕의 일본식 표현) 즉위식 행사 참석을 위해 22∼24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일본 정계 및 재계 주요 인사 면담, 동포 대표 초청 간담회 일정 등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취임 이후 2년 5개월 동안 상대적으로 국내 현안에 집중했던 이 총리가 한일 갈등의 장기화를 막기 위한 구원 투수로 처음으로 외교·안보 현안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당초 문 대통령은 즉위식에 직접 참석하는 방안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왕 즉위식이 임박한 시점까지 한일 양국이 갈등 해결을 위해 별다른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이 총리가 가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 대해 양측의 물밑 조율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면 문 대통령이 참석할 수도 있었지만, 그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다”며 “그 대신 교통부 장관을 파견하는 미국 등 다른 국가와 달리 최고위급인 이 총리를 파견하는 것은 한일 갈등을 풀어내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뜻을 거듭 보여준다는 의미도 담겼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방일 기간에 아베 총리와 회동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아베 총리에게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1+1’ 배상안에 대한 완벽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마주 앉아 외교적 해법을 찾아보자’는 문 대통령의 뜻을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이 총리는 방일 직전인 21일 정례 회동에서 대일(對日)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 지일파 이 총리, ‘소프트 스킨십’ 나설 듯
이 총리는 방일 기간에 즉위식, 아베 총리와의 회동 등 공식 행사 외에도 일본 여론을 움직일 다양한 일정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 시절 도쿄 특파원을 지내고, 국회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을 맡았던 이 총리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지일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총리실 관계자는 “한일 갈등 이후 이 총리가 수시로 일본 내 지인들과 일본어로 전화 통화를 하며 상황을 관리해왔다”며 “일본 정부도 즉위식에 이 총리가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총리는 정·재계 인사들과의 비공식 회동은 물론 한일 국민의 불편한 감정을 좁힐 수 있는 ‘소프트 스킨십’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상황에서 이 총리가 나서서 평범한 일본 시민들과 접촉하며 한일 갈등 해빙의 계기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이 총리의 방일이 양국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신중한 분위기다.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회동이 곧바로 갈등 해결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낮은 만큼 즉위식 이후 일본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일 갈등이 해결됐다고 하려면 (일본의 수출 규제 이전으로) 완전한 원상회복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일시적인 봉합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청와대는 이 총리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갈등의 폭이 더 커지는 것을 일단 막고, 후속 협의 등을 통해 11월 칠레에서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나 12월 중국에서의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정상이 만날 수 있는 흐름을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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