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신성한 지역은 어디일까? 고대 그리스를 기준으로 보면 아폴론의 신전이 있는 델포이일 것이다. 근현대를 기준으로 하면 동방정교회의 수도원이 밀집한 메테오라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매달린 바위’ ‘하늘 위에 떠 있다’ 등의 뜻이다. 아테네에서 5시간 이상 걸리는 북부 테살리아 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세상에 메테오라 같은 곳은 메테오라밖에 없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수직의 바위와 기암괴석, 그 위에 세워진 그림 같은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이곳이 제1차, 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다는 사실이다. 이곳에는 현재 6개의 수도원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큰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에 가면 당시의 전쟁화를 전시하는 복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이 공간에는 약소국이었던 그리스가 독일과 이탈리아와 어떻게 싸워 나라를 지켰는지 비장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군은 메테오라의 지형을 이용해서 산 위에 거점을 마련하고 대포를 분해해 로프에 매달아 바위 산 위로 끌어올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탄약상자와 보급품을 지고, 수직 절벽을 오르고, 남자들이 절벽 위에서 총탄을 퍼붓는 동안 여인들은 돌을 집어 절벽 아래로 던졌다. 조금은 과도하게 감성적이고 애국적인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신성한 장소가 피의 격전지였다는 사실이 서글프거나 놀랍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중한 것, 나아가 고귀하고 신성하기까지 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피와 땀 없이는 지킬 수 없다. 알고 보면 고대 아테네의 정치의 중심이었고, 그리스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위치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도 본래의 기능은 요새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자꾸 이 기본적인 진리를 잊고,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부정하기까지 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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