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의도와 달리 한글은 태어나자마자 한자(漢字)의 기세에 눌려 천대받았습니다. 반포 450년 후인 갑오개혁(1894∼1896년)에 이르러 비로소 나라의 문자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말살 대상이 되는 등 수난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영어 때문에 맥을 못 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글의 힘은 강력합니다. 최근 케이팝 등 한류 열풍을 타고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전 세계 60개국 180여 곳의 세종학당에서 수많은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국어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세종학당은 한국어 교육을 통해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교육기관입니다. ‘세종한국어’라는 표준 교재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으며 ‘누리 세종학당’이라는 온라인 사업도 운영 중입니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나라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2017년 한국어를 대학입학 시험 제1·2외국어에 공식적으로 포함시켰습니다. 지난해에는 터키도 초중고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제2외국어 과목에 한국어를 추가했죠. 현재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나라는 약 30개국에 이릅니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한글로 자신들의 말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한글은 우리가 만들어 낸 문화 업적 중 으뜸으로 꼽힙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 제작 원리까지 알려진 문자입니다. 발성 기관의 모습을 본떠 과학적 원리로 만들어진 한글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원음에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표음문자입니다.
9일은 한글 반포 573주년이었습니다. 곳곳에서 한글의 날 기념행사와 학술대회가 개최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8일부터 이틀간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한글문화큰잔치’를 열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과 국어문화원, 재외 한국문화원, 해외 세종학당 등도 다채로운 한글날 기념행사를 주최했습니다. 교육부는 8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한글 책임교육 공감 한마당’을 진행했습니다.
정부는 이미 2017년부터 한글교육 시간을 크게 늘리는 등 한글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에 51시간 이상 한글을 집중 이수하도록 하고 2학기부터는 웹 기반 한글 학습 지원 프로그램인 ‘한글 또박또박’을 통해 학생별 한글 수준을 진단합니다. ‘찬찬한글’ 등 다양한 학습자료를 활용해 일대일 수준별 맞춤학습을 돕기도 합니다. 내년부터 이 프로그램에 ‘읽기 유창성’을 진단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 시행한다고 합니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한글을 강조한 아이템을 선물하거나 기념 한정판을 출시하기도 하죠.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활용한 그래픽과 태극 문양을 활용한 감각적인 디자인에 소비자들이 반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한글이 일부 언론 매체와 일상생활에서는 훼손되고 있습니다. ‘갑툭튀’ ‘깜놀’ ‘인싸’ 등 지나친 축약어와 비속어로 소통이 단절되기도 합니다. 세대와 가치관 등 차이를 뛰어넘어 누구든지 서로 쉽게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세종이 꿈꾼 한글 창제 정신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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