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른바 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백두산과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면서 그가 백마를 타고 달리는 사진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며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백마를 타고 눈 내린 백두산을 달리는 김정은의 사진은 절대군주 시대에 머물러 있는 북한 체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은 백마를 타고 항일 독립투쟁을 벌였다는 김일성 우상화를 김정은에게 재현해 동생 김여정과 함께 ‘백마 탄 선지자’로 묘사해 왔다.
김정은은 정치적 고비마다 백두산 및 삼지연군을 방문한 뒤 중대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2013년 11월 말 방문 후에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했고, 2017년 12월 방문 후인 이듬해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며 남북 대화를 제의했다. 이번 ‘백마 쇼’는 최근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 등 비핵화 장기전에 대비한 내부 결속용이라는 분석이 많다. 계속된 대북 제재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 사정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자력갱생이 지도자의 고뇌에 찬 결단임을 강조하기 위해 백마까지 동원해 벌인 쇼맨십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내부 결속을 넘어 소위 ‘중대 결단’이란 협박 카드를 선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말 탄 김정은의 속셈을 짚어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어떤 대북 제재 해제도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원칙의 재확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백마까지 동원해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시대착오적인 북한 체제의 본질을 냉철히 인식하고 기존의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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