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두 ‘선수’가 맞붙었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탐색을 하느라 빙글빙글 돌았다. 틈이 있다 싶으면 사정없이 ‘펀치’를 주고받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빙글빙글 돌곤 했다. 격렬한 대결이었다.
요즘 인기 있는 격투기 경기인가 싶은데 사실 둘은 사람이 아니라 토끼들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생물학자로 나중에 노벨상을 받은 콘라트 로렌츠가 딸과 함께 숲을 산책하다 목격한 장면이다. 그는 나중에 ‘동물이 인간으로 보인다’라는 책에 이 광경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읊조린다. “토끼는 정말로 온화한 동물일까.”
그도 그럴 것이 녀석들은 큼직한 털 뭉치가 빠질 정도로 난타전을 벌였다. 나도 어렸을 적 토끼를 키우면서 몇 번 본 적 있는데 녀석들은 한번 붙으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려 한다. 상대를 거의 죽이다시피 한다. 아니, 그 귀엽고 착하게 생긴 토끼들이 진짜 그렇다고? 그렇다. 정말이지 보이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우리가 평화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비둘기는 더하다. 이 녀석들도 보기와는 달리 상대를 있는 대로 괴롭히는데, 상대가 도망가면 쫓아가서까지 인정사정없이 대한다. 끝장을 내려 한다.
귀엽고 평화롭게 보이는 녀석들이 이럴 정도니 무서울 정도로 거칠어 보이는 늑대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 녀석들의 싸움은 무시무시하다. 녀석들도 빙글빙글 도는 것으로 싸움을 시작한다.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그러다 틈을 보았다 싶으면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한판 붙는다. 여기까지는 토끼나 비둘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인상적인 건 이후다. 한 녀석이 ‘내가 졌다’며 항복 신호를 보내는 순간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 패자가 공손하게 내미는 목덜미나 배 같은 급소를 승자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문다. 단, 무는 시늉만 하지 실제로 물지는 않는다. 공손함이 사라진다 싶으면 다시 확실하게 승자와 패자를 확인시키지만 치명상을 입히거나 죽이는 일은 거의 없다.
왜 순한 토끼와 비둘기들이 상대를 죽이기까지 하는데 늑대는 그렇지 않을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먹이사슬의 위쪽에 있는 덩치 큰 녀석들일수록 같은 종을 죽이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 않아도 숫자가 적은데 이런 식으로 동족을 없애면 멸종에 가까워지기에 그러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고등생명체들이 주로 그렇다는 말도 있다.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다. 싸움 없는 세상은 없다. 문제는 싸울 때 토끼나 비둘기처럼 싸울 것인가, 아니면 늑대처럼 싸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로렌츠 역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인류가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싸우게 될 때 “그때 우리는 토끼처럼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늑대처럼 행동할 것인가. 인류의 운명은 이 질문의 향방으로 결정될 것이다”라고.
요즘 우리 역시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좋을까, 아니면 승부를 가린 후 ‘쿨 하게’ 상생의 길을 가는 게 나을까. 로렌츠는 “정말 궁금하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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