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규제… 혁신 지지부진… 한국에선 못 뜨는 인터넷은행[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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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혁신 아이콘’ 찬밥 신세
기존 카뱅-케뱅 각종 규제로 고전… 제3은행 예비인가 단 3곳만 도전
SKT-네이버 등 대어들은 손사래…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 있으면
IT기업은 대주주로 못 올라서… 비금융사 공격적 진출 길 열어준
일본-홍콩의 성공도 눈여겨봐야… 산업자본 지분 추가 허용 필요

“인터넷전문은행은 분명히 금융혁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은행의 사업성에 대해 국내의 한 정보기술(IT) 회사 관계자가 내린 결론이다. 인터넷은행이라는 사업모델이 주는 매력과 혁신 가능성은 높게 평가하지만, 국내 시장에선 그 가치가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기업은 국내에서 인터넷은행 도입이 거론될 때부터 수차례 사업 진출을 논의했고 내부적으로 협의도 거쳤지만, 결국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금융위원회가 7월 제3의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다시 받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은 다시 한번 술렁거렸다. 인터넷은행 ‘단골 후보’인 SK텔레콤과 인터파크, 네이버 등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는 물론이고 아직 인터넷은행에 발을 담그지 않고 있는 금융회사 이름들이 다시 거론됐다.

하지만 예비인가 접수 기한이 다가올수록 시장의 반응은 차가워졌다. 이름이 나온 기업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불참을 선언했다. 예비인가 접수 마감 결과, 5월 예비인가 획득에 실패했던 토스뱅크, 중소기업이 합심해 만든 소소스마트뱅크, 파밀리아스뱅크 등 3곳만 참여를 결정했다. 이 중 인가 가능성이 높은 ‘유효 후보’는 그나마 토스뱅크 한 곳뿐이다. 5월 예비인가를 신청했던 키움뱅크도 참여 의사를 접은 탓에 세간의 관심에서 더 멀어졌다. 한때 영국 홍콩 일본 등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핀테크 혁명의 상징처럼 거론됐던 인터넷은행이 왜 한국에선 외면받게 된 것일까.

○ 금융혁신 아이콘이 ‘찬밥’ 된 사연

인터넷은행이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비록 최근이지만, 도입 방안이 한국에서 처음 논의된 것은 약 20년 전이다.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는 2000년 전자금융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닦은 뒤 이듬해인 2001년 인터넷은행 출범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당시 일부 금융회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터넷은행 설립에 도전했고, SK텔레콤과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도 인터넷은행인 브이뱅크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비대면 영업 및 은산분리(은행과 일반기업 분리) 규제의 벽에 막혀 무산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금융당국은 산업자본의 은행 경영을 허용하기 위해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했지만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며 또다시 인터넷은행 출범이 좌절됐다.

인터넷은행은 박근혜 정부 때 다시 시도됐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인터넷은행 도입 방안을 발표했고, 그해 11월 결국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처음으로 본인가를 획득했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인터넷은행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은행을 재벌의 사금고로 만들 수 없다”고 반대하면서 은산분리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의 ‘규제 대못’이 빠진 것은 지난해 들어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은산분리 완화를 촉구하고 나서며 법안 통과에 힘이 실린 것이다. 결국 지난해 9월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별법이 시민단체의 반대를 이겨내고 국회 문턱을 넘었다.

금융위는 2015년 은행 자산의 규모와 대출 시장 규모를 기준으로 자체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그 결과 국내에서 영업할 수 있는 인터넷은행은 5곳까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앞서 인가를 받은 두 곳 외에 3곳의 추가 인가가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기업들의 제3 인터넷은행 참여를 독려했다. 네이버 SK텔레콤 등 IT 대기업부터 핀테크 기업까지 잠재 후보들을 모두 훑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핀테크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어 보이는 부서는 모두 밖에 나가 인터넷은행 홍보에 열을 올렸다”고 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토스뱅크’가 사실상 단독 신청을 했을 뿐 당국이 기대했던 대어(大魚)들은 모두 손사래를 쳤다.

○ 규제에 묶이고, 혁신도 못 하고

금융업계에서는 인터넷은행 인가전이 흥행에 실패한 것을 두고 몇 가지 이유를 든다. 우선 기존 인터넷은행에 대한 학습 효과다.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됐지만,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각각 카카오와 KT가 대주주로 올라서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금융회사의 대주주 자격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적격성 규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IT 기업이 인터넷은행 최대 주주가 되려면 금융 관련법, 공정거래법 등의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KT는 2016년 지하철 광고 담합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게 문제가 됐고, 카카오 역시 자회사인 카카오M의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 때문에 증자가 늦어졌다. 특히 케이뱅크의 경우 이 규제에 따른 자본금 부족으로 대출 영업이 수시로 중단되면서 사업 자체가 위기를 맞았다. 산업계에선 기존 인터넷은행들이 각종 규제로 고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업에 진출할 엄두가 안 난다고 하고 있다.

산업계가 인터넷은행에 관심을 잃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은행업의 경쟁 구도와 사업 전략의 독창성에 관한 문제다. 인터넷은행이 처음 출범할 때만 해도 금융권의 변화를 선도하는 ‘메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 은행들도 온라인·모바일 뱅킹을 강화하면서 인터넷은행을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카오뱅크가 그런대로 선전하고 있지만 기존 은행이 제공하지 않던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가 충분히 나왔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존 은행이 독식하고 있는 대출 시장에 인터넷은행이 비집고 들어갈 여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위의 분석과는 달리 국내 가계대출 시장 규모에서는 3개의 인터넷은행도 과도하게 많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당국이 가계대출 총량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인터넷은행이 할 수 있는 대출은 신용대출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급격히 대출을 늘릴 수도 없는 처지다. 시중은행과 경쟁해 고객을 빼오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인터넷은행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히던 저금리 대출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카카오뱅크의 최근 마이너스 대출 금리는 연 3.0% 안팎으로 시중은행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터넷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점 운영 비용이 들지 않아 금리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했지만 콜센터나 전산 비용이 들기 때문에 큰 이점이 없었다”며 “금융업도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시중은행과의 금리 싸움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 시장에선 “규제 더 풀어 달라”


시장에선 인터넷은행을 살리기 위해선 비금융회사가 공격적으로 은행업에 진출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과 홍콩에서 이미 자리 잡아 사업성을 증명한 인터넷은행의 성공 모델은 비금융산업과 은행업의 융합이다. 알리바바 텐센트 세븐일레븐 로손 등 비금융회사가 은행을 영위해 새로운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홍콩은 5월부터 8개의 인터넷은행을 한꺼번에 인가하며 금융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인터넷은행이 기존 은행의 자회사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3 인터넷은행 인가에 뛰어든 토스뱅크도 주요 주주 중 이랜드월드 등 일부 외에는 금융회사 일색이다.

무엇보다 대주주 적격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특정 법률 위반을 대주주 결격사유로 삼는 사례가 없다”며 “인터넷은행 특례법은 규제가 아니라 진흥이 목적이 돼야 한다”고 했다.

애매모호한 산업자본의 지분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행법상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34%까지만 보유할 수 있어, 나머지 지분을 채우려면 주주 구성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케이뱅크도 출범 초기 20개 회사가 지분을 쪼개 가져갔고 복잡한 주주 구성으로 증자 의결조차 쉽지 않았다.

다소 몸집이 큰 인터넷은행을 고집하기보다 ‘스몰 라이선스’를 통한 특화된 금융회사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몰 라이선스는 은행이 보유한 수많은 영업인가를 세분화해 개별인가로 내주는 것이다. 가령 소상공인 은행, 자영업 전문 은행 등 ‘꼬마은행’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금융혁신이라는 정책 목표에 더 부합하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 실리가 없고 명분만 남은 사업 모델이 됐다”며 “다시 한번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남건우 기자
#인터넷은행#금융혁신#제3은행#토스뱅크#예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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