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한 사립대 A 교수가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대입제도 개선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수시와 정시의 비율 조정이 없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정시를 반드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2020학년도 입시에서 수시 비율은 77.3%이고, 수시에서 가장 큰 비중이 바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다.
A 교수는 대학에서 오랜 기간 입시 관리를 맡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대학 관계자의 일반적인 발언과는 거리가 있다. 상당수 대학 관계자는 ‘대학이 원하는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수시 비율의 현행 유지를 주장한다. 또 정시를 늘리면 서울 강남3구와 양천구 등 이른바 ‘교육특구’ 학생만 혜택을 본다고 한다. 사교육 차이 때문이다.
사실 ‘정시 확대’ 주장은 현 정부를 비롯해 이른바 진보진영의 금기(禁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부정입학’ 의혹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정시 확대 없다”를 반복하는 이유다. ‘학생들을 수능 점수로 줄 세우지 않겠다’는 그 나름의 철학 탓이다. 그러나 수시 확대로 인해 고교 1학년 때부터 ‘내신 줄 세우기’가 시작된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학종 등 수시가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됐다는(또는 될 것이라는) 주장도 빼놓을 수 없다. 학교에서 교과 외에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 건 맞다. 하지만 학생 한 명이 2년 6개월(고1∼고3 1학기) 동안 교내에서 100개가 넘는 상을 받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2019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생 중 한 명의 사례다. 같은 해 서울대 수시 합격생 중 6명은 무려 400시간이 넘는 봉사활동 실적을 적어냈다.
백번 양보해서 사교육 규모라도 줄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2년 23만6000원에서 2017년 27만1000원으로 올랐다. 수시전형을 위한 컨설팅 세계는 더 요지경이다. 1시간 맛보기 상담이 30만 원, 1년 정기관리비 1000만 원이 수두룩하다. 입시 막바지 2개월 동안 5000만 원가량 받고 명문대 특정 전형을 준비해 준다는 컨설턴트 이야기를 듣고 말문이 막혔다. 수시 덕분에 학원 대신 학교 수업에 더 만족한다는 학생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작성 때문에 교사 눈치를 보게 됐다는 학부모의 푸념은 들었다.
수시, 특히 학종은 고교 1학년 때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정해 교내 수상 실적과 활동 경험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 뒤늦게 준비하면 학생부에 적힌 숫자를 바꿀 수 없다. 수상이나 특기사항, 봉사활동을 맞춤형으로 준비하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 정시 확대에 대해 어떤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이기지 못한 ‘패자’의 억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패자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부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더 교육적이지 않나.
정시 확대에 손사래를 치던 여당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입시제도는 없다. 수시는 정말 특별한 학생을 뽑는 제도로 운영하고, 대다수가 공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적 줄 세우기’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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