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난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다.’ 장애를 안고 희망을 노래하던 수필가인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2008년 6월 월간 ‘샘터’에 마지막으로 쓴 글이다. 아름다운 수필문학의 둥지가 됐던, 이웃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커뮤니티 같았던 샘터가 올해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에 들어간다. 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첫 호를 발간한 것이 1970년 4월. 내년 창간 50주년을 앞둔 시점이다.
▷최인호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 연재소설 가족은 1975년부터 무려 34년간 감동을 선물했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가족’을 계속 써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던 대로였다. 법정 스님은 산방한담(山房閑談)을 1980년부터 16년간 연재했다. 피천득 선생을 비롯해 장영희 교수와 이해인 수녀도 ‘샘터’가 키워낸 수필가들이다. 시인 강은교 정호승, 소설가 김승옥 윤후명, 동화작가 정채봉 등이 여기서 일했고 소설가 한강도 기자로 일하며 필력을 닦았다.
▷샘터는 유명 작가뿐 아니라 범인(凡人)들이 독자들을 웃고 울리는 잡지였다. 마지막 호가 될지 모를 12월호의 독자 참여 특집 주제는 ‘올해 가장 잘한 일, 못한 일’이다. 지금처럼 글을 쓸 공간이 없던 시절에는 이민 간 교포, 파독 광부나 간호사들이 그들의 애환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인연의 징검다리가 되기도 했다. 샘터를 구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다른 독자들이 샘터를 선물해주던 코너를 통해 책을 주고받다 커플이 되고 결혼을 했다.
▷지하철 가판대마다 꽂혀 있던 샘터를 찾기 힘들어진 요즘이다. 한때 월 50만 부까지 팔렸지만 최근에는 월 2만 부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창간 당시 책값은 100원.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는 고 김 전 의장의 뜻에 따라 지금도 3500원이다. 2017년에는 대학로 붉은 벽돌집 사옥을 팔고 이사했으나 매년 3억 원씩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샘터’가 창간된 그해 9월 동아일보에는 ‘활력 솟는 잡지계’라는 기사가 실렸다. ‘샘터’를 필두로 잡지들이 부담 없이 읽고 들고 다니기 편한 ‘경장(輕裝)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종합지·여성지의 중압을 회피하면서 주간지로 익혀진 핸디블한 책을 좋아하게 된 독자들의 구미를 맞추게 된 것이다.’ 바쁜 도시인의 손을 독차지했던 샘터는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주었다. 50년간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속삭이던 샘터가 많이 그리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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