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가 축구공을 쫓다가 자율주행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반대 차로로 방향을 틀면 아이들은 살릴 수 있지만 승객을 가득 실은 버스와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 자율주행차는 두 아이와 버스 승객, 단잠에 빠진 뒷좌석의 차 주인 가운데 누구를 살릴 것인가.
양해림 충남대 철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철학자의 시사산책’(276쪽·집문당)의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의 미래와 윤리’ 편에서 던진 질문이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제기해 더 유명해진 윤리학 사고 실험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의 4차 산업혁명 시대 버전이다.
양 교수는 “앞으로 자동차 회사들은 입력된 대로 판단하는 자율주행차를 설계할 때 윤리학(철학) 이론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학의 구현에 철학이 필요해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KBS대전방송 시사 프로그램 ‘생생뉴스’에서 방석준 앵커(전 보도국장)가 제기한 시사 이슈에 대해 양 교수가 답변한 내용을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자율주행차는 올해 초 대전에 온 문재인 대통령이 대전시를 4차 산업혁명 특별시로 선포했을 때 다뤄졌다. 방 앵커는 “시사 이슈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문제인 만큼 보다 근원적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인문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 책의 ‘생태 소비’ 편은 지난해 12월 3일 소비자의 날 방송됐다. 방 앵커가 생태 소비의 현황과 과제를 묻자 양 교수는 수상스키와 윈드서핑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둘 중 어느 것을 취미로 선택할지는 취향의 문제 같지만 ‘동물 해방’을 저술한 환경윤리학자 피터 싱어라면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았을 것”이라며 “수상스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리의 궁극적 목적이 실천이라고 생각한 싱어는 무엇보다 ‘절약의 생활화’를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시간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일부 대학이 재정난을 이유로 시행을 꺼렸다. 양 교수는 ‘대학의 이념’을 저술한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의 견해에 주목했다. “강사의 지위 보장은 대학을 명실상부한 학문의 전당으로 만드는 데 필수적입니다. 야스퍼스는 자본의 논리가 과도하게 지배하면 학문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야스퍼스의 관점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대학의 공감을 사기에는 부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의 본질을 일깨워 원점에서 사고해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대전 방문의 해, 일자리, 인권조례, 저출산, 동물 안락사 등 충청지역 현안을 비롯한 28가지 시사 문제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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