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리학자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팀은 1978년 7월 세계 첫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켰다. 7년 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도 국내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고 지금은 일정 규모의 불임치료 병원에서 두루 시술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인공 수정은 ‘신의 섭리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기술인 만큼 새로운 고민도 낳았다. 제3자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와 아버지 간의 부자 관계가 법적으로 종결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결코 끊을 수 없는 천륜(天倫)인지 여부다. 인류 시작 이래 이어진 불륜에 의한 출생 문제에 고민거리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부부 사이인데 남편이 아닌 남자의 정자에서 비롯된 아이가 있는 경우는 세 가지가 있다.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이미 아이를 낳은 여자와 결혼했거나, 부부 합의로 다른 남자의 정자를 공여받아 인공 수정했거나, 아내가 외도로 아이를 낳은 경우다. ‘타인의 정자’라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태어난 아이의 ‘신분’은 다를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부부가 이혼하고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해 호적에 입적시키면 부자 관계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된다. 갑론을박이 불가피한 것은 두 번째, 세 번째 경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3일 그 두 경우 모두에 대해 남편의 친자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판결의 당사자인 A 씨(남)는 무정자증으로 첫째를 타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 수정으로 낳았고, 둘째는 인공 수정 없이 자연 임신했다. 무정자증이 저절로 치유돼 아이가 생겼다고 여겼던 A 씨는 부부 사이가 틀어진 뒤 둘째가 부인의 외도로 생긴 아이임을 알게 됐다. 대법원이 첫째 아이에 대해 친생자로 판결한 것은 널리 인공수정 출산이 이뤄지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생물학적 관계가 없다 해도 인공 수정에 동의해 생명을 탄생시켰으므로 천륜처럼 끊을 수 없는 친자 관계라고 확인한 것이다.
▷대법원이 두 번째 아이, 즉 부인의 외도로 생긴 아이에 대해서도 친자로 인정한 데 대해선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법원은 ‘부부가 동거하지 않는 기간에 생긴 게 아니라면 친자로 추정한다’는 36년 전의 판례를 유지했는데 이는 ‘가족제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다만 민법은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소송을 내 번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A 씨가 소송을 일찍 냈다면 결론은 달랐을지 모른다. 유전자 검사로 과학적 친자 감정이 가능해진 세상이지만 여전히 부자 관계라는 천륜은 반드시 생물학적인 차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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