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부터 이달 초까지 열린 세계 4대 패션위크(뉴욕·런던·밀라노·파리) 런웨이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됐다. 통상 옷의 형태나 소재를 보면 남성복과 여성복이 웬만하면 구분됐지만 올해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밀라노 패션위크에선 핑크색 꽃무늬 디자인이 적용된 민소매 제품을 입은 근육질 남성이 무대에 올랐다.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스타일의 상의와 화려한 목걸이를 매치한 남성의 모습도 보였다. 지나치게 넉넉한 핏으로 디자인 된 여성용 재킷과 팬츠는 남자친구나 아빠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생소했다.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올해 세계 패션위크의 공통 키워드는 ‘젠더리스(Genderless)’다. 젠더리스 패션은 ‘치마를 입은 남성’과 같이 성별에 따른 전통적 패션 개념을 거부한다. 젠더리스 스타일이 올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올해 패션위크에는 유독 많은 브랜드가 성(性)을 구별 짓지 않은 젠더리스 제품을 선보였다. 흔히 남녀 공용 제품을 가리키는 유니섹스(Unisex)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젠더리스 패션은 좁게는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고 넓게는 나이의 구분까지 무너뜨린다. 이번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프랑스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 모델들이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오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젠더리스 패션에선 기존 남성복과 여성복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색깔과 스타일이 적용됐다. 주로 여성복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바지 앞이나 옆이 트인 ‘스플릿 레그 팬츠’의 남성용 제품을 여러 브랜드에서 내놓았다.
조금 거칠고 강렬한 스타일의 여성용 제품들도 눈에 띄었다. 파리 패션위크에선 아미(AMI)의 여성 모델들이 남성들이 주로 입는 가죽 소재 상·하의를 입고 나와 이목을 끌었고, 발렌시아가는 오버사이즈 핏의 여성용 슈트를 선보였다.
4대 패션위크가 다음 시즌 트렌드의 미리보기 현장인 만큼 2020년 봄여름(SS) 시즌에는 젠더리스 패션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젠더리스 패션으로 시작된 패션업계의 ‘경계 허물기’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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